귀농 5년이 된 집안 어른을 찾아뵈었다. 주사기를 든 그가 발을 구르는 송아지 뒤로 조용히 다가가고 있었다. 앞다리 하나만 묶어 매달면 뒷발로 사람을 차지 못한다 했는데, 정말이었다. 주사를 다 찔러 넣고, 어른이 송아지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어미소도 아픈데, 그건 혼자 못 하고 사람을 불렀네.” 기운 없이 늘어진 모습이 도시 사람인 내가 보기에도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배에 가스가 차면서 잘 먹지도 못한다 했다. 도착한 수의사가 털을 깎고 십자표시를 한 뒤에, 관 달린 바늘을 힘껏 찔러 넣었다.

자전거 바퀴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어른이 수의사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상처가 덧나는 것을 막으려 마지막에 놓은 주사를 궁금해하는 기색이었다. 수의사가 비닐장화를 벗으며 이것저것을 답했다. 처방에 쓴 약병이 축사에 떨어져 구르자 어른이 “내가 청소하겠다”며 얼른 주웠다.

폐렴, 진드기, 피부 버짐… 어른은 “소도 사람만큼 많은 병에 시달린다”고 했다. 어른이 장갑을 벗어넣는 서랍장을 보니, 소들에게 쓰는 소염제 진통제 항생제 등 온갖 약병이 한가득이다. 술이 깨지 않던 날 내가 맞으러 가던 수액 비슷한 것도 보인다.

“항생제는 두번 놓느냐” “이 약 다음에 저 약이냐” 동료 축산업자들과 수의사들에게 틈틈이 물어보면서 모인 약병들이라 했다. 대뜸 그게 뭐냐 하면 들은 체 만 체하던 전문가들도, 경험을 공유하며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은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문답들이 대학노트로 몇 권이 됐다. 두께만큼 귀농의 자신감도 늘어났을 것이다.

“신문기자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겠어?” 어른의 말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형님, 뭐 없어요?”하면 형사들은 “세상이 조용해”라고만 대답했었다. 초년병 때, 정부 고위관료로 내정된 대학 교수의 엘리베이터와 달리기 시합을 한 끝에 겨우 건넨 질문이 “언제 연락을 받으셨습니까”였다. 그는 다른 기자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입을 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결국은 취재와 기사쓰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묻고 답하는 게 사람이 가진 가장 탁월한 능력이라니, 직업병 같은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묻는다는 건 소크라테스에겐 진리를 깨닫게 하는 산파술이었다. 지금 법조계에서도 여전히 “진술이 점(點)을 선(線)으로 만든다”고 한다.

도대체 뭘 물어본 건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며 검찰청사를 나가던 피의자가 있었다. 그 모습을 전하니 “그게 특수수사지”라고 했던 특수통 검사도 있었다. 제대로 물을 줄 안다면 이미 진리의 절반을 안 것이라고, 윌 듀란트가 ‘철학이야기’에서 말했었다. 그 때까지는 몰래 약병을 줍는 노력이 있어야 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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