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다64442 판결

1. 사건의 개요

가. 원고는 갑(조선소)과 선박건조계약(이하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면서, 갑에게 선박 건조를 위한 선수금을 여러 차례 제공하고 선박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선수금을 환급 받기로 하였다.

한편, 원고는 피고(은행)로부터 ‘취소가 불가하고 무조건적’이라는 문구가 기재된 선수금환급보증서(이하 ‘이 사건 보증서’)를 수령하였다.

나. 갑은 원고가 3차 선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였는데, 반대로 원고는 갑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고 갑에게 1, 2차 선수금의 환급을 구하였으나 갑은 이를 거부하였다.

다. 이에 원고는, 갑이 선박을 건조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유용할 목적으로 선수금의 지급을 청구한 것으로서 원고에게는 선수금 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아니하므로 갑의 계약해제는 부적법하고, 오히려 원고의 계약해제가 정당하며, 이는 피고가 발급한 이 사건 보증서에 기재된 선수금 반환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선수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2. 원심의 판단 - 원고 청구 기각

갑이 건조선박에 관한 용골거치, 강재절단을 시행하였음에도 원고가 3차 선수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에 따라 갑이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고 기왕에 지급받은 1, 2차 선수금을 손해의 전보에 충당한 이상 원고는 갑에 대하여 선수금 환급을 청구할 권리가 없고, 원고는 이러한 사정을 잘 알면서도 이 사건 보증서의 추상성 및 무인성을 악용하여 피고에게 선수금 반환청구를 한 것이므로, 이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3. 대법원의 판단 - 파기 환송

가. 독립적 은행보증의 보증인으로서는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보증의뢰인이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되는지를 불문하고 보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점에서 독립적 은행보증에서는 수익자와 보증의뢰인 사이의 원인관계는 단절되는 추상성 및 무인성이 있다. 다만 수익자가 실제로는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보증의 추상성과 무인성을 악용하여 보증인에게 청구를 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할 때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보증인으로서도 수익자의 청구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으나, 원인관계와 단절된 추상성 및 무인성이라는 독립적 은행보증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면, 수익자가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수익자의 형식적인 법적 지위의 남용이 별다른 의심 없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권리남용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나. 독립적 은행보증인 이 사건 보증서에 기한 원고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원고가 이 사건 소제기를 통하여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갑에 대하여 아무런 선수금환급 청구권이 없음에도 독립적 은행보증의 수익자라는 법적 지위를 남용하여 청구하는 것임이 독립적 은행보증인인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 사건 보증금 청구 당시의 사정, 즉 이 사건 소제기 전에 이루어진 원고와 갑 사이의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에서도 갑의 계약해제가 적법한지 여부가 1년에 걸친 심문절차에도 결론 없이 회생절차폐지로 종결된 점 등을 고려하면, 소제기 당시 원고가 갑에 대하여 선수금 환급청구권이 없음에도 보증금을 청구하는 것임이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4. 판결의 의의

원심은 이 사건 보증을 독립적 은행보증으로 인정하면서도 원고가 선수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으로써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되었음을 강조하여 원고의 보증금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추상성 및 무인성이라는 독립적 은행보증의 본질적 특성을 감안할 때 수익자가 보증의뢰인에 대하여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리남용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하였다.

본 판결은 선박건조계약에서 선수금환급보증의 법적 성질이 독립적 은행보증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권리남용의 적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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