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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변카페]우리 법원
김희수 변호사·사시 52회  |  pgoin.hop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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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호] 승인 2016.04.04  09: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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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법원’이 있다.

난 거의 한 법원만 다니다보니 ‘우리 법원’이란 호칭이 익숙하다. 도시 외곽을 출발해서 버스를 타고 몇 구비 돌면, 마이클조던이 점프를 해도 손이 닿지 않을 것처럼 천장이 높은 1970년대 풍 하얀 법원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법원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우선 재판에 시간 제약이 없다. 재판장은 당사자의 말을 끊지 않는다. 저러다가 판사들이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옆집 고사리를 훔치지 않았다며 인생살이를 한 시간이나 풀어 놓은 ‘할머니 사건’ 이후 법원의 방침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대로다. 다행히 재판이 늦어질 땐 실무관이 당사자들에게 재판 지연 상황을 문자로 알려주니 반발은 없다.

이곳에선 판사와 당사자의 아이컨택이 가능하다. 어떤 법원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해놓고, 30초를 넘어가는 순간 판사가 등을 쇼파에 기대고 시선을 회피하며 한숨을 내쉬는 비진술언어로 ‘빨리 끝낼 것’을 압박한다고 한다. 당사자는 옷가게에 세워진 영혼 없는 마네킹에게 말을 하고 온 것 같다고 서운함을 토로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을 만나려고 수개월을 기다렸는데…’하면서. 그러나 우리 법원은 다르다. 당사자가 입을 열면 재판장이 눈을 맞춘다.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러니 재판 결과가 나빠도 재판장을 욕하는 법이 없다.

전과 10범이 넘고 눈에 살기가 돋친 피고인이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신기하게도 그의 눈빛이 순해졌다. 비밀은 법정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에 있었다. “반성문을 보니,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좋아한다고요? 저도 그 노래 좋아합니다. 그래서 틀어놨습니다”라는 재판장의 말을 듣자 피고인은 눈물보를 터뜨린다. 선고 후에 이어진 재판장의 한마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징역 4년의 중형이 선고되었으나 피고인은 항소하지 않았다.

현실에 ‘우리 법원’은 아직 없다.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처럼 상상으로 만들어 본 법원이다. 법정은 원래 무서운 곳이다. 자유를 빼앗기고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통조림 같은 요식행위가 아닌,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한 의식(儀式)을 꿈꿔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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