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헌법교과서들이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법부 재판관들의 가치관 내지 재판태도에 관하여 소극주의와 적극주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늘날 국회는 적극적인 개혁·개선입법을 지향하고, 행정도 개발행정, 복리행정 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나, 사법은 이미 발생한 범죄를 대상으로 하거나, 존재하는 ‘분쟁’을 심리·판정하는 소극성을 띠는 것이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인 사회보장 행정 내지 복리행정의 보장·개선은 사법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의 성향에 대한 입장은 야경국가관에 입각한 ‘질서국가’관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는 타당성이 있는 견해이나, 오늘날과 같은 ‘사회복리국가’의 이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가의 임무를 사회질서유지를 위한 임무·국방임무와 복리국가 임무로 나누어 볼 때, 전자의 경우는 여전히 전통적인 사법의 소극성이 지배하는 분야다. 즉 개인의 이해에 국한된 사법분야, 각종 형사범·행정질서범 등에서는 법원의 법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의 소극적 태도는 나무랄 데가 없고,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회보장법, 노동법, 경제법 등의 분야에서 사건에 임하는 법원의 재판관, 그와 관련하여 직면한 법률의 위헌심사, 헌법소원심판에서는 보다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실정법의 해석·적용에서 근로자보호·사회보장이라는 가치관이 더 많이 투영될 것이 요구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필칭(言必稱) 법원의 법관, 헌법재판소의 재판권은 입법자도 아니고, 행정책임자도 아니라는 주장을 하나, 그것은 재판에서 ‘정의’ 내지 ‘조리’의 적용을 회피하는 태도로 현대국가의 이념과는 거리가 먼 무사안일주의적인 주장이다.

물론 현대 복리국가의 주된 임무는 행정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이다.

그러나 오늘날 복리국가를 실현하는 데 사법부(법원·헌법재판소)가 다소의 임무도 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고전적 권력분립의 입장이고, 3부 공동화를 요구하는 헌법의 이념에 반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국민의 자유권은 국가기능의 소극화를 요구하나, 복리국가 실현은 경제민주화·사회보장을 강력히 수행함으로써 보장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입법의 적극화, 행정의 적극화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법원도 노동법, 경제 관련법, 기타 사회보장법 등의 분야에서 법실증주의적 태도를 지양하여야 한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그 재판에서 보다 사회복리 지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실정법에 형식적으로 구속되는데도 자유권 보장 중심이었을 때 취하던 소극적 태도는 사법이 국민의 기본권(특히 사회권) 보장을 위해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현대복리국가이념에 반한다. 물론 재판관이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무소불위(無所不爲)로 행정에 간섭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툭하면 ‘입법자에게 형성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거나, 법원이 여러 종류의 항고소송(이른바, 無名抗告訴訟)의 인정에 소극적인 것은 국민의 사회권 보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에 비하여 ‘사회보장’ 예산 비율이 낮은 나라다. 이것은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인(특히 국회의원)과 행정부 책임자의 가치관이 ‘사해동포(四海同胞)’적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바꾸어 말해,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기할 의지가 없어서라고 보면 논리의 비약일까.

독일의 법철학자 베크(W.BECK)는 ‘후진국에서 헌법조문은 색인에 불과하고, 참다운 실질적 헌법은 정치다’ 라고 갈파한바 있다.

사실 재벌과 정치인이 합심하여 선진국과 동일한 정도의 국민소득에 비례한 ‘경제민주화’, ‘사회보장’의 실현에 노력하지 않으면, 뢰벤스타인 용어대로 헌법은 ‘장식적 헌법(가식헌법)’에 불과하다.

그리고 법원도 법규명령의 위헌성·법률의 위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심사하여야 한다. 물론, 최근 ‘사회보장’에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 구석구석에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과감히 도려내야만 ‘경제민주화’를 기할 수 있다.

무리한 욕심 같지만 사법부도 적극적·전향적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미국이 대법관 임명에서 ‘진보적 성격’ 여부를 심도 있게 심문하는 것은 기본권 보장에 어떤 사고·가치관을 갖느냐를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법 기술 내지 재판관의 법 적용 기술상 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곳곳에서 ‘사법 적극주의’ 구현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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