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학 경주캠퍼스 예술대학원 강의가 있었다. 남들은 힘들게 그 먼 경주까지 가서 강의를 하느냐, 혹은 교통비 빼면 뭐가 남겠느냐며 걱정을 해준다. 그러나 내가 강의를 계속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매주 출강을 해야 하지만 대학원 교학처의 배려로 격주로 출강하는 것을 허락해주어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2주에 한 번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오는 재미도 꽤 괜찮아서이다.

또 하나는 그곳 경주의 대학원생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원생들보다 더 순수하고 인간적이라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의 교감이 잘되어 강의를 하는 동안에는 무척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도 강의 요청을 망설임 없이 수락하였다.

내가 강의를 맡은 강좌는 ‘민속악 연구’인데 이론을 현장에 접목하여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데, 내 착각인지 몰라도 꽤 반응이 좋은 편이다. 강좌가 진행되는 대학원 강의실은 나와 수강생들 간의 따뜻한 정으로 훈훈하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지역 공연예술 현장에서 종사하는 예술인들로서 장르도 다르고 연령도 다양하지만, 강의실 안에서는 한 형제자매처럼 서로를 챙겨주고 보듬어 준다.

그런데 어제는 사고가 났다. 내 건망증 증세가 사고를 친 것이다. 강의실 컴퓨터에 승용차 열쇠에 매달린 강의 자료가 내장된 USB를 꽂아두고 수업을 하다가, 수업이 끝나고 그것을 꽂아둔 채로 깜박 잊고 서울로 당당하게 돌아온 것이다.

이른 아침에 내 승용차로 출근하기 위하여 열쇠를 아무리 찾아봐도 열쇠가 없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부랴사랴 수강생 중 마음씨 곱고, 예쁘게 생긴 수강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다행히 전화를 받기에 서둘러 강의실로 가서 찾아보라고 부탁을 하고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였다. 다행히 승용차 열쇠가 매달린 USB는 그 대학원생이 강의실까지 가서 찾아냈고, 보내준다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뭔가 허전했다. 지하철로 한 시간 가까이 달려와 사무실 앞에 다다라서야 깨달았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이다. 건망증으로 어제 그렇게 심각한 일이 있었는데도….

요즘 건망증이 더 심해졌다. 병인가? 맛이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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