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옛날 판례가 있다.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강간피해자가 시간이 지나 자살에 이른 사건들.

우리는 안다. 그 지독히도 재수 없는 사고가 아니었다면 꽃다운 나이에 그녀들이 건물에서 투신하거나 자살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법이란 그렇다. 피해자가 집에 돌아가 음독자살했더라도 강간행위와 자살행위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강간치사죄로 의율할 수 없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법리나 판례 한두 가지씩은 있다. 하지만 법은 우리 모두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다. 위헌결정이 나거나 신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현행법을 지키고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 사례에서도 법원은 오랜 판례로 굳어 온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깟 강간 한번 당한 것 가지고 왜 훌훌 털지 못하며, 당장 그 자리에서 죽자 사자 덤비다 사망에 이른 거면 모를까, 집에 잘 돌아와서는 웬 자살? 어찌 보면 이상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사망을 피고인에게 원인지울 수 없는 것일 게다.

반면에 우리네 법 감정이라면 어땠을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강간임을 알고 있는데 당연히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철저히 법과 판례만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봐야만 하는 곳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 있는 나는 이런 법위의 법, 인간이 내린 판례와 마주하곤 한다. 변호사랍시고 법리를 들먹이며 우리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충분히 다퉈볼 만 하다고 목청 높여 봤자, 사람목숨 가지고 법리 운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신념에 찬 눈빛과 맞닥뜨리게 된다. 순간 법리며 판례는 사라지고, 사람냄새 풀풀 나는 우직한 그분들의 판단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때로 변호사로서 나 자신과 인간 기미진 간에 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배워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살며 옳다고 믿는 것 사이에 언제나 똑똑한 내가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결국 사람, 법 위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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