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엄지발톱 색깔이 드디어 환해졌다. 모처럼 마주한 연한 분홍빛이다. 어느 새 3월. 지난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단단한 재질의 부츠를 신고 나간 어느 날 눈앞에 미처 보지 못한 보도블록 턱에 쾅 부딪치고 나서부터이니 한 3~4개월만인 것 같다. 왼쪽 엄지발가락 끄트머리가 무척 아팠지만 피가 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잊고 살았는데 스멀스멀 색깔이 어두워졌었다. 원래 집안 가구 여기저기에도 몸을 잘 부딪쳐 상처가 잘 생기고 또 약을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이내 아물었기 때문에 발톱에 든 멍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긴 겨울 내내 어둑어둑한 왼쪽 엄지발톱은 고집스럽게도 두꺼운 스타킹과 양말 속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왜 발톱이 빨리 자라지 않을까 왜 멍이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만 하며 무심히 지나치던 왼발을 붙잡고 이쪽저쪽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뭔가 이상했다. 발톱 가장 겉면은 왠지 좀 부풀어 있는 듯 했고 유독 딱딱하고 생기가 없어보였다. 애써 들추고 그 속을 들여다보니 분명 얇고 덜 단단하나 그냥 속살이 아닌 분홍색 옅은 막. 새로운 내 발톱이 숨죽이고 있었다. 나는 도구를 들고 낑낑대며 가장 겉면의 딱딱한 부분을 제거해 나갔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조심스럽게 작업한 끝에 마침내 내 발톱은 본래의 색상을 되찾았다.

맨발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더운 계절에 앞서 마침 평범한 발을 되찾게 된 나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왼쪽 엄지발톱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몸은 참 신기했다. 피부에 생긴 상처와 보호막에 생긴 멍을 분별해서 나름 회복의 궁리를 찾아나갔다. 조심조심 행동하지 않는데다 약도 잘 챙겨 바르지 않는 무심한 주인을 만났으면서도 한 마디 원망 없이 기특하게도 스스로 치유해 나갔다. 다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가로 세로 1.5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발톱 하나 원상복구에 걸린 시간은 100일이 넘었다. 병원에 갔으면 좀 더 그 기간이 단축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조용히 혼자 해낸 내 몸의 생명력이 기특했다.

마음에도 상처가 날 때가 있다. 마음도 쾅 하고 어딘가에 부딪쳐 검푸른 멍이 들 때가 있다. 상처를 치유할 약도 없고 이겨낼 힘도 없어 망연자실해 있을 때도 마음의 생명력은 꿈틀꿈틀 일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도 잊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멍이 든 마음은 단단한 껍질이 되어 손톱깎이 같은 것을 이용해 떼어내 버리면 그 속엔 조금 연하고 약하지만 생기가 도는 분홍빛 건강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6년 3월. 또 새로운 봄이다. 과거의 상처, 멍이 든 마음의 껍질은 떼어내고 훨훨 자유로워질까 보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었던가. 한 시집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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