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대리인으로서 소송을 진행하면 입증자료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행최고나 계약해제를 알리는 내용증명이 필요하고, 양수금 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채권 양도계약서 내지 양도 통지서를 보내야 할 경우가 생긴다.

의뢰인에게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진술서나 사실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하면, 오히려 그 초안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고, 심지어는 수임하기 전 상대방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이행 독촉을 하는 내용증명을 작성해달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새내기 변호사 시절, 의뢰인이 요청하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에는 의뢰인이 요청하면 사실 확인서나 내용증명 쯤이야 하면서 다 작성해주기도 하였다.

거절할 수 없는 의뢰인의 요청에 응하여 적은 분량의 서면 대행은 무료로 해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재산명시신청, 소송비용확정신청, 지급명령신청 등 간단한 신청사건까지 모두 무료로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의뢰인 입장에서 변호사가 분량이 적은 서면을 쓰는 것은 간단한 일로 보는 것 같은데, 변호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서면을 쓰기 때문에 분량이 적다고 결코 들이는 노력이 적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나 그것이 소속 법무법인 이름으로 보내질 때에는 그 무게감과 책임감이 전혀 다르다.

결국 내가 자처한 서면 대행이 쌓이다보니, 잡다한 일이 많아지게 되고, 중요 사건에 들일 시간과 노력이 현저히 줄게 되었다. 더 황당한 건 이런 서비스를 의뢰인은 당연시하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독촉한다는 점이다.

연수원에서 얼마나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를 강조하였던지, 위와 같은 사소한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호의에 기대어 서비스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을 자주 마주치게 되니 그야말로 당연한 걸 새삼 깨달았다. 법률서비스는 유료라는 점이다.

최근 동료변호사들과 한 판사의 황당한 보정명령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판사는 친절하게도 본인소송을 하는 원고에게 ‘무료법률상담’을 받아 주장을 정리하라는 내용의 보정명령을 내렸다.

왜 굳이 ‘무료’라고 하였을까. 이젠 나의 노력을 무료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법률서비스는 유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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