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밝혀두겠지만 기자는 ‘흙수저’는 아니다. 금수저 은수저라고는 못하지만 대충 ‘스테인리스 수저’ 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흙수저’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세간에 떠도는 말을 종합해 보면 ‘가난한 집에 태어나 늘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취업이나 사회생활에서 항상 불이익을 당하는 약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연봉에 따라 금·은수저와 흙수저를 구분한 기준도 떠도는 모양인데, 대략 연봉 3600만원 이상이면 일단 흙수저는 면하는 모양이다.
언론사의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15년차가 넘어가면 그 정도는 넘고, 무엇보다 기자라는 명함만 들고 있어도 어디가서 홀대를 당할 일은 없다.
게다가 기자처럼 기성 언론사의 법조팀장쯤 되면 여기저기 걸쳐있는 인맥도 제법되고 그런 인맥을 적절히 활용하면 적어도 억울한 일이나 설움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흙수저는 분명 아니다.
물론 개인적 민원 때문에 그런 인맥을 쓰는 건 떳떳한 일은 아니다. 떳떳하고 말고는 차치하더라도 좀 아는 사람이라고 대놓고 무슨 부탁을 한다는 것이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기자는 웬만하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일처리를 하려고 한다. 관공서에 가서도 누구나 그러하듯 민원실에 가서 서류 접수하고, 공무원이 전화를 하면 고분고분 받는다.
그 과정에서 평정심이 흔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정중하게 일처리를 하려고 한다. 내가 정중하게 대한다면 공무원인 상대방은 당연히 나를 정중히 대해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매번 빗나간다. 처음에 조금 과하다 싶은 요구나 언행을 참아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아예 내놓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나중에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라거나 “안 된다는데 왜 그래요”라는 큰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것을 꺼내놓게 되지만 노골적인 비웃음을 당하기 일쑤다. “알면서도 그래요?”라고 빈정대기도 하고 ‘네깟 것이 알아봤자 뭘 알겠느냐’는 태도까지 보인다.
혹여 짜증이라도 내면 대뜸 ‘큰 소리 치지 말라’는 호통이 돌아온다. 민원서류 접수시키러 가서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셈이다.
말도 안 되는 사안을 접수시키려 한 것도 아니고, 겨우 몇 달 전 나를 피신청인의 자리에 세웠던 사안과 똑같은 사안으로, 입장만 바꿔서 가지고 간 경우인데도 그런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기자가 인맥을 동원하는 순간 상황은 돌변하게 된다. 담당자의 태도는 180도가 넘게 바뀐다. 심지어 “진작 말씀 하시지요”라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기도 한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서류를 제출하면 됐지 뭘 ‘진작 말씀하시라’는 것인지 매우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이런 태도는 공무원일수록, 특히 목에 힘깨나 줄 수 있다는 곳일수록 심하기 마련이다.
기자가 흙수저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흙수저로 살기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래서 ‘헬(Hell)조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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