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영화에 ‘작전명 발키리’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최고위층에 속했던 사람들의 히틀러 암살 실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최근의 우리나라 영화 ‘사도’도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되 그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는 영화 중의 하나다. 이와 같은 영화들은 결말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어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이번달 2일 마무리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표결을 저지하기 위한 야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마찬가지다.
이미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된 이상 법안 통과는 기정사실이었다.
9일 동안 총 38명의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192시간 26분이라는 세계 최장 시간 이어지는 무제한 토론에 동참했다. 야권은 법안 통과를 사실상 막을 수가 없음에도 왜 필리버스터에 나섰을까.
그러나 ‘작전명 발키리’나 ‘사도’에서 보듯 결말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진행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테러방지법은 2001년 미국의 9·11테러 발생 이후 김대중 정부가 발의한 것이 최초다.
그 후 수차례 발의와 폐기가 이루어지던 테러방지법은 제19대 국회에 이르러 드디어 쟁점 법안으로 집중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법안 폐기의 주된 이유가 국정원의 권한 남용 우려 및 인권 침해 소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이슬람국가 동조자 발생과 프랑스 파리 테러 등으로 인하여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이 급대두된 것이다. 여론도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데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필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급변하는 변호사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골몰하는 일개 변호사에게 테러방지법이 와 닿을리 없었다.
하지만 야권의 필리버스터를 대하면서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국정원에 금융정보 등 개인정보 수집권이 부여된다거나 통신감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등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거나 국정원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게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이번 필리버스터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평소 전파낭비라고 생각했던 국회방송 시청률이 10배나 뛰었고 여의도 국회로 직접 뛰어간 수많은 시민이 이를 반증한다. 세계 최장 시간 이어진 필리버스터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데 일조했다.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의 역할이 대두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테러방지법이 국민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은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그동안 테러방지법에 대한 홍보나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무제한 토론에 참여했던 국회의원들이 이를 자신의 홍보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이는 누워서 침뱉기다.
그동안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못한 것이 필리버스터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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