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연재끝난 칼럼
[살며 생각하며]아버지, 그 삶의 이름
채정원 변호사  |  jean@yoonjoong.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580호] 승인 2016.02.29  09:59:5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내가 몇살 때였을까, 천둥 번개가 치며 억수같이 비가 오던 유난히도 캄캄한 밤, 어머니가 나물반찬을 고루 갖춘 저녁식탁을 차려주셨다. 나는 비빔밥을 해먹겠다고 고추장을 찾았는데, 옛날 우리가 살던 단독주택은 장항아리들을 두는 장독대가 본채와 분리되어 마당에 있었다. 고추장을 가져오려면 미친 듯 쏟아지는 빗속에 집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어머니가 비빔밥은 나중에 먹으라 달랬지만, 나는 비빔밥이 아니면 안 먹는다 떼를 쓰다 결국 된통 야단을 맞았다. 식탁 앞에서 입술을 씰룩대며 훌쩍이는데, 문득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추장 여기 있다. 아빠가 밥 비벼줄게.”

고개를 드니 조금 전까지 식탁 맞은편에 앉아계셨던 아버지가, 비에 젖은 옷자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서 계셨다. 조그만 고추장 종지를 보물처럼 안고 계셨다. 소리도 없이 언제 자리를 뜨셨던지,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오던 그 밤, 고추장을 뜨러 장독대에 다녀오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직 훌쩍이던 내 옆에 앉아, 큰 그릇에 갖은 나물을 넣고 막 떠온 고추장을 섞어 밥을 비벼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비벼주신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말하곤 한다. 그리고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지금도, 나물과 고추장만 있으면 나를 위해 밥을 비벼 주신다. 맛있게 먹는 중년의 딸을 서너살 아이 보듯 흐뭇하게 보신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저릿한 가슴앓이가 생겼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직장에서 보낸 아버지, 주 6일 근무에 휴가라고는 1년에 3~4일 여름 한철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일요일은 대청소를 하지 않으면 식구들과 등산을 가는 날이었다. 산기슭에서 가재를 잡고 놀아주시다 밖에서는 남자가 일하는 거라고, 개울에서 물을 떠다 버너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셨다. 며칠 안되는 아버지의 여름휴가는 끝없는 교통체증 속에 무거운 짐을 떠안고 가족들과 하는 여행에 바쳐졌다. 그리고 나는, 직장인이 되어 보고서야 그저 놀이 같았던 그 일들이 결코 당연하지도 쉽지도 않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금싸라기 같은 휴일, 일년에 사흘뿐인 귀한 휴가를 우리를 위해 그리 피로하게 보내셨구나.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어렵게 쌓은 하루하루를 그대로 우리에게 써주셨구나.

아침 해가 드리운 거실, 하얗게 센 눈썹 밑에 아직 형형한 눈으로 한시를 쓰는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가 그려온 시간들을 함께 더듬으며, 세상을 살아낼 기운으로 번져오는 아프고도 따뜻한 가슴 저림을 느낀다. 먼 훗날 언젠가는 나도, 나의 시간을 더듬으며 아버지처럼 시를 쓰리라. 그리고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버지’라 대답하리라. 내 눈이 보고 내 가슴이 느끼며 닮아갈, 내게 가장 가까운 그 삶의 이름을.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변협 페이스북 개설… 국민회원과 소통 나섰다
2
이재동 준법지원인특별위원장과 함께 법조영역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다
3
변협 대표단, ABA 연차총회 참석
4
“대한변협회관, 서초동 이전 계획 마련”
5
소송의 새로운 영역, 행정심판을 관장하는 이상민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심위원장과 함께 나눈 담소
Copyright © 2017 대한변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koreanba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