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주여성이 한국에 오기 전 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사실을 숨겼더라도, 이를 이유로 남편이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A씨가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B씨는 혼인을 취소하고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A씨와 결혼한 B씨는 이듬해 함께 살던 남편의 의붓아버지인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B씨의 고소로 시아버지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 중 B씨가 과거 베트남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B씨는 “열세살 때 베트남 소수민족 남성에게 납치돼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으며, 8개월 만에 친정으로 도망쳐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가 데려가 버렸다”며 이러한 사실을 결혼중개업자에게 알렸으나 그가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출산 사실을 속이고 결혼했기 때문에 사기결혼에 해당한다”며 이혼과 함께 위자료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민법에 따르면 사기로 인해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혼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2심은 “출산 전력은 상대방이 혼인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고려요소에 해당하는데도 B씨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며 ”B씨가 출산했던 사실을 알았더라면 A씨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폭행 피해를 당해 임신·출산했다면, 이러한 사실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회통념상 고지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단순히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혼인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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