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통증은 다음 날에야 찾아 왔다. 이미 날이 저물어 사위가 어둑어둑해 진 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량들의 지루한 행렬 속에서였다. 나는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를 괴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아픔이 일더니 서서히 번져나갔다. 이젠 퇴근해 집에 가도 아이를 볼 수 없구나.

전날 나는 작은 아이를 멀리 떨어진 학교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가는 데만 4시간이 걸렸고 싣고 간 아이의 짐을 기숙사 방에 부려주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살림살이가 대충 정리되고 나자 돌아 갈 길이 아득해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들은 서둘러 떠나려는 엄마가 야속했던지 괜히 이것저것 일거리를 내게 주며 자꾸 발걸음을 붙들었다. 드디어 방정리가 끝나고 나는 강당에서 찾아 온 교복을 아이에게 입혀 살펴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꿈꾸어 오던 순간이었다.

작은 아이는 2년 전 제 형이 이 학교를 졸업하던 날, 눈 쌓인 운동장 한 구석을 우산으로 쿡쿡 찌르며 “나도 오고 말거야” 혼잣말을 했었다. 동생에게는 형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과 형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함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제 형과 같은 교복을 입게 된 기쁨이 더 크고 남달랐다.

형제는 닮는다지만 자라면서 두 아들은 정말 판이하게 달랐다. 옷이건 음식이건 큰 아이는 언제나 ‘아무거나’로 족하지만 작은 아이는 호불호가 분명하였다.

형은 몇 번을 다닌 길도 늘 초행길처럼 헤매는데 동생은 한 번 간 길을 결코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자랄 때 큰 아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나서 오히려 현실감을 갖도록 보리밟기를 해주어야 했었다. 반면에 작은 아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못한다며 손사래부터 먼저 해서 언제나 북돋움이 필요하였다. 큰 아이가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질 못하는데 작은 아이는 적당히 하고 그만둘 줄을 알았다. 형이 책읽기를 즐기고 기계에 어둡다면 동생은 책보다는 컴퓨터와 친해 잘 다루고 영상 편집에도 밝았다. 아이들은 나하고도 판이하게 달랐다. 내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하면 아이들은 ‘내일 해도 되는 일은 절대 오늘 하지 말자’고 하였다.

작은 아이는 제 진학 목표에 합당한 준비를 놓고 나랑 사사건건 충돌했었다. 그러던 아이가 누구도 못 건드린다는 중2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자 문득 정신을 차린 듯 달라지기 시작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내 성에 차지 않는다 해도 이제 잔소리를 멈추어야 할 때라는 걸 직감하였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때가 있는 것 같다. 그 때가 이르기까지는 어떤 싸움도 상처만 남길 뿐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나는 그제야 보았다. 어렸을 때 작은 아이는 삐약삐약 병아리 흉내를 내 어른들에게 웃음을 주곤 했었다. 그 후 삐약이는 아이의 애칭이 되었고 여태 그렇게 부른다.

이제 삐약이가 둥지를 떠나고 나는 빈 둥지에 남았다. 빈 둥지 증후군이 이런 것인가 실감나게 허전하고 아프다. 어느 시인은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 하지 말고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주는 마음 속 보금자리를 만들라 하였다. 나는 그런 둥지가 되어야겠다. 더 큰 세상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아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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