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도입과 함께 법조일원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경력법조인의 법관선발과 관련하여 법조단체인 변호사회의 역할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일원화의 원리상 당연히 변호사회의 참여와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과 법관임용은 어디까지나 대법원의 고유권한이므로 변호사회는 필요한 정보와 자료의 제공으로 족하다는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특히 근래 법률신문이 사설로 후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변호사협회의 관련활동을 비판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방향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법권의 본질과 그 사법권을 행사할 법관의 구성이 과연 어떤 원리에 따라야 할 것인가 하는 근원적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법치국가에서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의 한 부분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사법권은 국민과 별개로 국가가 통치권처럼 행사하는 고권적 권력행사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의 위임에 따른 수임자로서 그를 대신하여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수임된 권력을 독립된 사법부에 맡겨 국민을 대표할 구성원들이 실제 행사하도록 한다는 원리인 셈이다.

요컨대 법원이 행사하는 사법권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권한행사이며, 구체적으로는 그 소속구성원인 법관들이 이를 실제 사건처리에 대입하여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법원의 구성과 그 핵심인 법관의 선발·임용은 국민주권을 여하히 위임받아 행사할 것인지, 그에 맞는 적격자를 뽑는 것이어서 마땅히 국민의 이름으로 이를 대표할 적임자를 선발해내는 것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영미와 독일, 프랑스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판사의 선발임용을 법원 조직의 내부 인사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의 적임자 선발이라는 국민적 참여의 과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과 주법원 모두 복잡다단한 추천·심사와 검증을 거쳐 적격자를 골라 대의기관인 의회의 승인을 받아 연방과 주의 대표자(대통령/주지사)가 임명하고, 이 과정에서 법조단체인 ABA나 SBA가 적격심사 및 평가기능의 핵심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ABA의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가 후보자에 대한 조사, 면접 등 심층심사를 거쳐 적격, 부적격의 판정을 내리면 그대로 지명위원회 등 선발기관에 전달되어 부적격판정 등급자는 그것으로 탈락하는 구조로 연동되어 있고, 한편 선거제를 택한 주의 경우 당연히 국민에 의한 직접선출이므로 그 자체로 국민적 선발이 되는 셈), 영국의 경우도 변호사 등 법조인은 물론 다수의 민간일반위원으로 된 법관지명위원회(14인)가 적정절차에 따라 추천된 후보자들 중 적격자를 선발·결정하고 있고(상급법원 판사의 경우도 선정위원회가 심사·결정하여 수상이 국왕에 제청),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이 의장으로 주재하는 국가적 기구인 ‘최고사법위원회’ 산하 담당기구(다수의 일반위원을 포함한 선정위원회)가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선발된 여러 분야의 후보자들을 심사·선정하도록 되어 있고(심지어 검사도 유사 방식으로 선발 임용), 독일의 경우 역시 주, 연방 모두 법무(사법)장관이 주재하는 판사선출위원회를 통하여 의회와의 협동작업으로 적격자를 선정하면 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다(이 모든 경우 법조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과 변호사회가 필수적 역할을 맡도록 되어 있다).

가까운 이웃 일본의 경우도 최고재판소장관 및 최고재판관은 내각을 대표하는 수상이 지명(임명)하여 최종으로 천황의 임명(인증)을 받고, 기타 일반판사의 경우는 비법조인과 법조인으로 혼합 구성된 ‘재판관지명자문위원회’가 적임자를 선정하여 제출한 명부에 따라 수상이 임명하는데, 판사 추천에 있어 법조단체인 ‘일변련’이 첫 단계의 후보자 선발·추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소속변호사회의 추천이나 심사를 거쳐 적격후보자를 최고재판소에 접수시키는 방식 포함) 세계 각국의 선진제도는 어디를 보나 판사의 선발·임용은 법원의 고유권한이나 인사문제와는 전연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의 주권위임에 따라 사법권을 수행할 법원의 구성원인 법관을 선발, 임명하는 일은 단지 법원내부의 인사문제가 아닌, 국민을 대표할 수임자를 뽑는 국가적 과제의 임무임을 잘 알수 있다(그런 뜻에서 독일의 판결문에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한다 라는 고정문구가 표시되는 걸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세계각국의 판사임명은 법조단체의 필수적 기능 역할을 매개로 국민적 대표성 있는 선발기구에서 국가적 차원으로 결정되고 그 최종 임명도 당연히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 국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과거 비민주적 시대의 왜곡된 체제에서 임시방편으로 이를 대법원장에게 맡겨온 결과 마치 대법원의 고유권한이나 법원내부의 인사사항인 것처럼 오인되어 온 것이다. 이는 또한 과거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전근대적인 봉건관료국가의 속성하에 운영되던 관료사법체제가 해방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탓에 사법관료주의 의식행태가 온존되어 온 탓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법관의 선발과 임용을 마치 특정조직의 직원을 뽑는 일처럼 법원 내부의 인사사항으로 보거나 법원의 고유권한이라는 식의 주장이 거론되는 것은 사법에서조차 낙후된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널리 뿌리깊게 퍼져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사법의 본질과 법관선발의 원리에 대한 민주적 법치주의에 맞는 올바른 인식정착의 계기를 세워 올바른 민주적 원리에 의한 법조일원화의 목표를 바르게 실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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