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 골프장에서 대학동기와 골프칠 때 서울의 Y변호사가 소개한 충격적인 이야기. 변호사가 2만명이 넘으니 이제 소송점쟁이가 등장하였다고 한다. 당사자가 소송자료를 가지고 가서 5만원 복채를 놓고 승패를 점쳐달라고 하면 점쟁이 변호사는 이를 보고 점을 쳐준다고 한다. 송무가 레드오션이니 점 영역이 블루오션의 영역으로 등장한 모양이다. 당사자는 복채 5만원을 내고 송무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돈 많은 수감자들을 상대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려주는 엔터테인먼트 변호사. 법이론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버는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다. 하루종일 중노동하고도 손에 쥐는 돈은 한달에 고작 250만원 내지 300만원이라니, 변호사 가격폭락을 반증하는 것이다. 개업 2~3년차 청년변호사는 사무실을 자주 옮긴다. 양지길가에서 음지 뒤골목으로. 임대료가 한푼이라도 싼곳을 찾아서 이주한다. 주 수입원은 국선변호료와 가정법원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돼 한달에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다. 빠듯한 살림살이다.

성년후견인제도는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100세 수명연장에 재산분쟁이 심화되어 법원이 직권개입하고 덩달아 변호사도 선임되니 젊은 변호사의 일자리창출에 일조를 하고 있다. 개인회생파산제도도 젊은이의 영역이다. 개인회생파산제도는 그렇게 심오한 법이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 서류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니 브로커가 득세하여 변호사명의를 빌려 변호사영역을 침탈한다. 손봐도 한참 손봐야 한다.

이제 수사기관의 조사에 피의자를 입회하는 변호사는 일상사가 되었다. 경찰에 피의자와 함께 출석하여 4~5시간 대질신문에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어둠이 내린다. 검찰에 오전 10시에 조사에 입회하고 오후 8시에 마칠때 절로 한숨이 나온다. 입회조사는 하루를 잡아먹으므로 수임료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을’ 변호사입장에서 이를 반영하기에는 만만치 않다. 반면 전화 한통에 억대 수임료를 받아서 폼나게 살고 있는 구름 위 상층부 변호사를 보면 변호사의 빈부격차를 느낀다. 누구는 매일 동으로 서로 뛰어다녀도 수임하는 돈은 하찮은데 상층 변호사는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전화 한통으로 끝내주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게 현실인 걸. 웃어야지! 변호사의 빈부차이는 고스란히 고시동기회의 부부동반모임에 반영되어 다이아몬드의 휘광(輝光)이 가난이 몸에 밴 부인들의 기를 죽인다.

형사사건의 사례금무효화판결 이후에는 은밀히 사례금약정을 하고 돈을 건네 받지만, 이는 얼마 후에 소리없는 암살자로 다가와서 일부사례금을 토하게 만든다. 거의 성공가능성이 없는 사건에 돈과 몸을 던져 대박이 터지면 노다지를 잡고, 쪽박을 차며 투기한 돈도 날아가고 골병이 드는 변호사도 드물게 본다. 광맥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3년이나 끌어온 사건을 조정으로 마무리지어 그 변호사는 금맥을 움켜 잡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목돈을 쥐고자 노력하는 변호사는 성실성이 묻어난다.

성폭력사건에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인도 새로운 영역이다. 피해자와 직접 만나기보다는 변호사를 통한 합의이므로 합의는 수월하지만 합의금은 생각보다 고액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재판부가 수사기록을 보고 소송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권으로 배상금을 책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변호사가 당사자를 대리하여 변호사본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죽기보다 싫다. 처분문서가 명백한 사건에서는 그렇다치더라도 쟁점이 많은 복잡한 사건에서 변호사를 상대방으로 불러낸다는 것은 아직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소위 ‘상어 변호사’가 드물지만 이제 많은 변호사 수는 변호사가 변호사를 잡아먹는 상어변호사를 일반화할 것이다

관리잘못으로 사무장이 공탁금 등을 해먹어 곤욕을 치르는 노(老) 변호사도 가끔 본다. 사무장은 형사책임을 지지만 변호사는 사용자책임에 휘말려 법정에 피고로 출석하는 모습은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한다.

법정에서 상대방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변호사나 깐죽거리는 변호사를 만나면 정말 일생 두번 다시 조우하고 싶지 않다. 자기주장만 앞세우고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독선적변호사도 가끔 보인다. 본인사건이 아니고 ‘대리’하는 사건인데 상대방을 매몰차게 몰아붙이기보다 상대방을 혜량하는 여유를 보일수 없을까 매번 스스로 반성한다. 재판지정시간은 훈시규정인지 지쳐 기다리다 재판부의 석명에 동문서답하는 변호사를 보면 본인도 그렇게 하는게 아닌지 화들짝 놀라곤 한다. 민법 책을 몇 회독하였는지 의심이 드는 변호사는 우선 자질부터 갖추어야할 것이다. 변호사로서 법정터에 나오기 전에 기본기를 갖춘 다음에 전사로서 출전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로서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회오리 바람에 티끌 흩어지는 순식간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시름보다 기쁨이 많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년 1500명의 변호사가 쏟아져 나온다고 하니 이 많은 숫자를 어디에서 소화할 수 있으리.

그러나 다 죽 쑤는 것이 아니며 그중 양질의 변호사로 살아남는 자도 있을 것이다. 살아 남는 변호사에 속하도록 오늘도 갈기를 세우고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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