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 사형수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기자가 쓴 기사가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취지였다.

그는 여자 초등생 2명을 납치·살해하고, 40대 여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사형이 확정된 인물이었다. 1심에서는 강간살인과 상해치사 등이 인정됐지만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인정된 부분은 강제추행 살인과 상해치사,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체은닉이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기사의 “초등학생을 납치·성폭행 하려다 살해한 혐의로…”라는 부분이었다. ‘성폭행’이라는 것은 강간을 의미하는데 자신은 강제추행 살인만 인정됐으므로 ‘성폭행 하려다’라는 표현은 허위사실이라는 거였다.

이 사건으로 기자는 2년 가까이 소송에 시달렸다. 주변 지인과 동료기자, 평소 알고 지내던 법조인들은 하나같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내리 승소했지만 확정판결문을 받아들 때까지 불안했던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라 해도 소송은 소송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소송을 하면서 가장 갑갑했던 것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입증하는 것이었다. 답변서를 써 내려가면서도 문득 문득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삼키기 힘들었다.

그런 마음을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기에 기자는 법정에서 조우한 그 사형수를 쏘아 보는 것으로 불편한 심경을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내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형수는 법정에서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수의를 입지 않았다면 그저 동네 아저씨 같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에 도대체 어떤 괴물이 숨어있는지 그 이중적인 본성에 다시 한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재판이 모두 끝난 뒤, 동료 기자들은 지나가는 말로 “사형수의 얼굴이 어떻더냐”라고 묻기도 했다. 아마도 소송 도중 내 갑갑했을 심경을 위로하려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너무도 평온해 보였던 사형수의 얼굴이 떠올랐고 ‘인간 내면의 지독한 이중성’을 되새김질해야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소송을 한번 당하고 나니 문장 한줄, 단어 하나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는 점이다. 혹여 소송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싶은 마음에 최대한 원만한 표현을 찾으려다 보니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한 기사가 양산되고 있었다. 시쳇말로 ‘트라우마’인 셈이다.

성급히 예상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지 싶다.

최근 후배기자가 명예훼손 쟁송과 관련해 급히 도움을 요청해 온 일이 있었다. 기사에 언급된 인물로부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의사가 전달돼 왔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언론중재위 제소를 공언한 사람은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유하 교수다. 후배기자가 쓴 기사 가운데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이라고 표현해 기소됐다”는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박 교수 주장의 핵심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박 교수는 자신이 ‘자발적 매춘’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으며 다만 ‘일본 우익의 표현을 비판적으로 인용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아직 언론중재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후배기자는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그 부분이 분명 포함돼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나는 사형수한테 소송을 당한 적도 있다”며 후배기자를 달랬지만 그 억울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박 교수의 통보를 받은 뒤 후배기자가 눈에 띄게 위축돼 있다는 점이다.

그 어떤 위로나 격려로도 위축된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언론중재위가 됐든 법원이 됐든 기사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 뿐이지 싶다.

후배기자가 박 교수와 어떤 자리에서 조우하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나도 함께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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