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이어’라고 하면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듯싶다. 그 빅이어는 영어로 ‘Big Ear’라고 쓰고 손잡이가 큰 귀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 표기하면 같은 빅이어가 되지만, 전혀 다른 빅이어가 있다. Big Year! 이것은 미국에서 새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탐조가들이 일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수의 새를 관찰하는가를 놓고 벌이는 경기이다.

미국 빅이어대회에 참가한 탐조가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코미디영화 ‘빅이어’를 보면 빅이어에 참가한 자들의 경쟁적인 새 관찰의 열정에 대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경기에서는 적어도 1년에 750여종 정도는 관찰해야 우승을 넘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빅이어에 참가하기 위해 대기업 사장직을 내려놓은 노신사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미국 유수의 컴퓨터 회사인 DELL사)을 그만둔 젊은이, 그리고 2연패를 노리는 전년도 우승자 보스틱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새를 좋아하고 새 관찰에 미쳐서 더 늦기 전에 빅이어에 참가해서 우승하는 것이 인생의 꿈인 사람들로 당장 눈앞의 중요한 계약체결을 위한 회의도 펑크 내고, 멀쩡한 직장에 사표를 내고는 빅이어에 출사표를 던지고, 희귀종 새가 나타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짓(?)을 일년 내내 하게 된다. 빅이어 2연패 기록에 혈안이 된 보스틱은 2세를 갖기 위한 아내와의 약속까지도 저버리고 새를 쫓아 다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새들과 새소리, 새를 좋아하는 탐조가들끼리의 우정과 열정이 흐믓한 미소를 짓게 하는 기분 좋은 영화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참 좋은 영화다. 아이가 새를 좋아한다면 더더욱!

우리나라에서도 작년부터 아마추어탐조회에서 ‘그린버더즈 빅이어’라는 대회를 개최하여 올해 2년째를 맞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탐조나 탐조대회가 낯설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의 종이 미국대륙처럼 많지도 않아 200여 종 이상 관찰하면 우승을 노려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희귀한 새 때문도, 그런 새들을 정신을 잃고 좇는 탐조가 때문도 아니었다. 영화는 다른 의미에서 내게 매우 강렬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승자를 결정하려면 대회 참가자들이 관찰한 새의 종이 몇 종인지 카운트해야 하는데, 이 때 반드시 사진이나 증빙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이 점이 바로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새를 관찰하면서 운이 좋으면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지만, 어떤 경우는 보자마자 날아가거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사정은 많을 것이다.

어떠한가? 참가자가 만약 보지도 않은 종을 봤다고 거짓말을 하면, 그래서 그가 다른 정직한 탐조가보다 더 많은 종을 관찰한 것으로 되어 우승을 한다면? 이런 경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작년부터 열린다는 대회에서도 이와 같은 구두로 봤다는 기록이 인정될까? 나의 개인적인 선입견으로는 아무래도 인정이 안 될 것 같다. 뭔가 당신이 관찰했다는 사진이나 기타 증거를 요구할 것 같다.

이런 나의 선입견은 증거재판주의에 익숙한 나의 직업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거짓말이 너무 횡행하고, 거짓말에 너무 관대한 탓이 아닐까. 사회지도층인사들부터 시골할머니까지 우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그다지 느끼지 않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청문회에 장관후보자로 나온 사람도,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도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한다. 우리나라가 사기나 위증, 무고로 처벌되는 건수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많게는 수십 배나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미국이 오늘날 이 정도의 청렴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순간마다 있어 온 양심선언자들 덕분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양심선언자들은 돈도 벌고 유명세도 얻는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돈 때문에 양심선언을 하는 것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한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양심선언을 한 사람들은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생계조차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양심선언을 한 순수한 의도조차 의심받고 불신을 당한다. 거짓말에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정직한 양심은 충분히 보상하여, 우리 사회에 정직함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당장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거짓말한 이력이 있는 자에게 표를 주지 말자. 아니, 그러면 투표를 아예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급적이면 거짓말을 더 적게 한 자, 상대적으로 더 정직하고 성실하게 국민을 위해 일할 것 같은 자에게 한 표를 던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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