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으로 형사재판에 변호인으로 들어간 때는 2002년 봄이다.

사법연수원 2년차로 법원 시보를 할 때, 지도 법관이 “김 시보, 법원시보 할 때 국선변호 한번 해봐야지. 많지는 않아도 수당도 좀 될거야”라고 하면서 필자를 국선변호인으로 지정했다.

사건의 내용은 대형 트럭을 운전하던 피고인이 수도권 어느 고속도로를 운행하다가 자기가 싣고 가던 화물의 결박이 풀려버렸는데, 그 바람에 화물이 추락하면서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을 덮쳐서 그 운전사가 사망해버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죄 사건이었다.

안타까운 사건이기는 하나, 사건의 내용으로 볼 때에 변호인으로서의 사건처리는 어려울 것이 없는 사건이다.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부인할 리도 없을뿐더러, 이미 발생한 피해에 관하여 피해보상과 형사합의 여부를 점검하고 그에 관한 양형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되, 피고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부각하여 선처를 구할 일이다.

그러는 한편, 피고인에게 교통관련 법규위반의 전과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면 된다.

법공부도 했고, 실무도 배웠다. 그렇지만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한번도 처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계시는 가장 유능한 법률가인 지도교수님께 구원을 요청했다.

지도교수님은 실제 사건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제자가 대견했는지 “연수원 수료하고 1년까지는 지도교수가 질문을 받아준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는 국물도 없다”라고 하시면서, 피고인을 접견해서 유족과의 형사합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우선 접견을 가야했다. 그러나 접견을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형사변호사 실무 책을 찾아봐도 정확히 어떻게 하라고 되어있지가 않았다.

이곳저곳 동료들에게 물어서 대략 그 방법을 알아냈는데, 접견신청서를 팩스로 교도소에 보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무작정 교도소를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피고인을 접견하기는 했는데, 거기서 또 난제에 빠졌다. 피고인이 말하기를 ‘형사합의는 아직 보지 못했고, 가족들이 어느 정도의 돈을 공탁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경우 자기가 석방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실제 현실에서 이런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한번도 그런 사건을 처리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피고인의 질문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었다.

그 때 피고인에게 어떻게 대답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필자로서는 당시 유사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관해서 완결된 몇 개의 소송기록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에 따라서 중요한 쟁점을 점검해서 사건처리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공익법무관, 변호사로 신분이 바뀌면서 사건을 처리할 때 가장 먼저 챙기게 된 것은 전임자나 주위 선배들이 비슷한 사건을 처리한 예(例)가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었고, 비슷한 사건을 검토하면서 안도하곤 했다. 판례나 종전의 처리 관례가 있으면 그에 맞추어 사건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무난했기 때문이다. 재판절차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에 관례를 먼저 숙지하고자 했다. 창의적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교도소에서 피고인이 재판부에 쓰는 편지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천편일률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그 틀에 맞추어 쓰지 않으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되는 것인지, 그 틀에 맞추지 않으면 재판부에서 자신을 엄벌에 처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특유의 ‘탄원서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흔히 많은 피고인은 자신의 반성을 담은 최후진술을 편지지에 적어 와서 그대로 읽는데,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피고인이 주위 지인들과 싸움을 한 것이 무슨 ‘사회적 물의’씩이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해야만 재판부가 자신을 굽어 살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도 마찬가지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자백하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자신의 딱한 처지를 설명하는 방법이 특유의 ‘탄원서체’인 것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변호사로 수년간 일하는 동안 생각은 점점 바뀌어 그 방법만이 반성의 왕도일까 하는 회의가 들곤 한다.

“처음부터 자백했고, 수사에 협조했으며, 피고인이 깊이 뉘우친다”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적어 내다보면 법관들이 오히려 ‘영혼 없는 반성’이라고 보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직 대법관들이 명 변호사로 꼽았던 분들은 ‘변호사는 판사를 설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실천한 분들’이거나, ‘꼬장꼬장한 지조’, ‘사건의 맥락과 배경, 의뢰인의 절실함까지 완벽하게 전달하는 열정’을 가진 변호사들이었다고 한다. 무난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탁월한 법리와 인문학적 식견을 갖추면 보다 더 좋은 결론을 받아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실천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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