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에서 화해계약으로 종결되는 비율은 통계상 70% 전후로서 소송이나 조정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실무상 환자 측이 달라는 금액과 의사 측이 주겠다는 배상금 차이가 대부분 너무 커서 화해계약을 체결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화해의 기본조건이 상호양보인데, 당사자 사이의 이해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화해계약은 또 다른 분쟁을 일으킬 수 있어,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의료사고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먼저 합의 당사자의 대리권과 합의대상이 확인되어야 한다. 환자 측의 가족, 의료인 측의 직원들이 나서서 합의하는 과정에서 대표권, 대리권이 문제되면 합의 자체가 무효화된다.

다음으로 합의내용이나 과정에 따라 무효나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아래와 같은 상황이다.

첫째, ‘의료분쟁의 전제된 사실의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취소할 수 있다. 의료행위로 인하여 사망, 중증장애 등 악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점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범위만을 다투다가 합의되었으나, 전제된 사실이 다른 경우이다.

합의 후 의료과실이 밝혀진 경우에는 환자 측이, 무과실이 밝혀진 경우에는 의료인 측이 각각 “분쟁의 전제된 사실의 착오가 있었다”는 이유로 화해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화해계약으로 확정효가 미치는 범위는 분쟁대상에 대하여 서로 양보하여 확정한 사항에 한정되고, 분쟁대상의 전제 내지 기초로서 예정된 사항 기타 분쟁의 대상으로 되지 않았던 사항에 착오가 있을 때는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민법 제109조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 측 사례로는 어깨관절 재건술 도중 병원감염된 환자의 경우이다. 의료인 측이 “무과실이다, 골수염 이외에 다른 합병증이 없다”고 하여 합의하였는데, 그 후 감염 악화로 어깨힘줄이 끊어지는 장애가 남은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합의 당시 의료인 측은 후유증이 남지 않고, 병원감염에 대한 무과실을 분쟁의 전제로 하여 다툼 없는 사실로 양해하였는데, 실제로는 병원감염으로 장애가 남았으므로 이건 합의는 취소할 수 있다”고 하여 추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다음 의료인 측 사례이다. 마취과 의사가 수술도중 자리를 비운 사이 사망하자 유족들이 마취과실이라고 주장하며 병원에서 농성하였다. 당황한 의사가 마취사고를 전제하고 합의하였는데, 그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마취와는 관계없는 지방색전증으로 밝혀졌다. 이에 법원은 “마취과실을 전제로 합의한 것으로서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전제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분쟁이 지속될 경우 병원의 운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 사망 직후 서둘러 합의를 하게 된 점 등을 고려하면,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다”고 하여 합의금을 반환하라고 판시하였다.

둘째, 지나치게 낮은 금액으로 합의한 경우는 환자 측의 경솔, 궁박, 무경험상태에서 이루어진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로 보아 무효이다. 의료사고는 원인, 내용, 현 증상, 예후 등에 있어서 당사자 간의 의학지식에 커다란 격차가 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숨기고 위로금조의 화해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공서양속 위반으로 무효가 될 수 있다. 실무상 예상청구액의 10~20%에도 미치지 못하는 합의 또는 형식적인 위자료지급 등에 대해서는 무효로 보고 추가지급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무효나 취소뿐 아니라 계약 후 환자에게 예상하지 못한 장애가 새로 발생하는 경우에는 추가청구가 허용된다.

판례는 제왕절개술 후 창상감염 된 환자가 의료인 측과 화해한 후 합의 당시 예상할 수 없었던 소장유착증상이 새롭게 나타난 경우로 “합의가 사고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손해의 범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후발손해가 예상이 불가능한 것으로서 손해가 중대한 것일 때에는 다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화해계약은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최선의 판결보다 최악의 화해가 낫다는 법언처럼 분쟁을 조기종결 한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변호사입장에서는 제소 전에 편지, 이메일, 전화, 직접 면담 등 다양한 접근방법을 통해 화해시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이때 의료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진료업무방해 내지 협박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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