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과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극중 이름 정환)’를 들어보셨는가. 얼마 전 종영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 속 여주인공의 ‘남편찾기’를 지칭하는 용어다. 드라마는 1980년대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지금은 사십대가 된 당시 십대들의 이야기 나온다. 이중 여주인공 덕선의 현재 남편이 될 사람은 단 하나. 틈만 나면 덕선에게 “너 예뻐” “괜찮아?” “기다릴게” 등 애정 어린 말을 던지는 천재 바둑기사 택이, 혼잡한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힐까 남몰래 지켜줄 만큼 덕선이를 좋아하지만 겉으로는 “특공대(특별히 공부 못하는 돌대가리)” “미쳤어?”를 입에 달고 사는 정환이가 후보군이다. 지인들 사이에선 맞추기 내기를 하는 ‘응팔 토토’ 현상까지 벌어졌다.

결과는 “너 예뻐”라고 말한 택이가 덕선의 남편이 됐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결말은 사람 관계에서 말 한마디가 갖는 중요성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람과 속으로만 좋아할 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사람의 차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 길이 없다. 비단 감정 뿐 아니라 생각이나 의견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소한 말 한마디의 무게는 이렇게 인생을 결정지을 만큼 크다.

그건 우리가 소통의 존재, 호모 사피엔스라서 그렇다. 사람에게 영혼이란 게 있다면 말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다. 누군가의 글이나 말이 따뜻하다면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일에 욱해 타인에게 함부로 욕을 하거나 행패를 부려 법정에 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말이 필요하다고 해서 수다스러울 필요는 없다. 적시적소가 아니라면 안 하느니만 못 하다. 침묵과 진중함을 미덕으로 여겨 온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는 특히 표현에 서투른 편이다. 관심과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마디 건넨다는 게 상대방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주는 경우를 자주 봤다. 젊은 세대도 소통에 능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빈약한 공감능력으로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 곧 다가오는 설에도 말로 주는 상처 때문에 서로를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다. 평소 관계 지향적인 대화 습관을 갖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은 법정에서도 작용한다. 법정 안에서는 법관들의 언행도 사법 작용의 일환이기 때문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다.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을 배려하는 판사의 말이 재판의 품격을 바꾼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형사사건에서 재판이 끝나면 피고인들에게 항상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당사자들로서는 사법부가 자신의 감정까지 배려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물론 결과가 맘에 들지 않아 쌩하니 돌아서거나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재판정에 앉아 있는 또 다른 피고인, 변호사, 검사, 기자들에게는 일종의 사인(sign)이 된다. 피고인을 향한 사법부의 존중을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보안법 재심사건의 경우 무죄가 인정됐다면 법원은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법리적으로 유무죄를 따지는 것만이 사법부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2013년 서울고법은 1970년대 ‘유럽 간첩단 사건’의 희생자 고(故) 박노수 교수의 재심사건에서 박 교수의 유족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재판부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 법원의 형식적인 법 적용으로 당사자들에게 크나큰 고통과 슬픔을 드렸다”고 했다. 평생을 무고하게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온 유족들로선 조금이나마 응어리가 풀렸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가끔 등장하는 ‘막말 판사’들을 보면 법관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사소한 지점들이 모여 우리 사법의 지향점을 드러낸다. 나아가 전체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여줄 것이다. 법이 인간의 행동과 관계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라면, 그 법을 어떤 모습으로 현현할 것인지는 오롯이 법조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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