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험이 없는 젊은 판사가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을까.”

판사들이 이런 질문을 들을 때 변호사들도 유사한 질문을 듣습니다. “변호사는 각 분야의 모든 사건을 다 처리할 수 있는가?”

나는 매우 현명한 대답을 합니다. “판사들의 수준이나 변호사의 수준이 비슷합니다. 판사들이 사회현상을 법 논리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변론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수준에 있는 변호사들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려놓고 내가 받은 패소 판결서들을 분석하고 질문합니다. 왜 이 쟁점에 대하여는 판단하지 않았을까. 증거조사신청을 너무 과감하게 기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판사는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어떤 이유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일까. 지나간 변론기일에서 판사가 하였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준비절차를 진행하지 않거나 쟁점정리를 하지 않았던 재판부가 야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꼭 이겨야 하는 사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아는 진실이 절박할수록 판사는 내게서 초조한 모습과 절박한 모습만을 찾는 모양입니다. 그가 왜 그렇게 절박할까 묻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패자의 모습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본질을 바라볼 능력을 행사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현상을 자로 재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측면이 있어서 판사가 상대방에게 그런 행동을 할 때에는 짐짓 모른 체 서서 입을 다물고 기다립니다. 그 소송은 내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거든요. 이번에는 상대방이 패소원인을 분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판사들은 불복하는 당사자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할까요. 원심 판사 입장에서는 상소심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미루고 상소심 판사 입장에서는 원심에서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 당사자들에게는 판단 받을 기회가 세번 주어졌는데 재판부에게는 그 판단 책임이 삼분의 일로 줄어든 것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나는 그동안 상황판단능력을 매우 중요한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개업 초기의 짧은 한때 나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우 훌륭한 사업가들도 사소한 법적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계약교섭단계, 계약체결단계 또는 분쟁발생단계에서 어이없는 자충수를 두기도 합니다. 그것이 젊은 변호사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아는 사소한 것을 의뢰인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업의 문제요소들을 알고 있을 뿐 그 사업의 원동력이나 창의력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법 지식의 우물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현상들에 둘러싸일 때 보이지 않는 본질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그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3의 가설을 상상하고 의뢰인의 눈빛에서 진실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현상을 찾아 진실의 조각그림들을 맞추어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물 밖의 세상으로 지도를 펼쳐야 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의뢰인의 인식세계가 좁거나 소통방법이 부족할 때 발생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의사소통을 못하십니까?”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은 없습니다. 진실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내가 씨름하는 진실들은 대부분 흔적들을 남기고 있거나 의뢰인의 눈빛에서 그 흔적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사들이 밖으로 드러난 현상들에만 집중할 때 변호사들도 그럴듯한 증거자료들만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것이 소송지휘권으로 현실화됩니다. 증인은 믿을만한 언변과 태도만을 구사하게 되고 당사자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력이 질서 순응적이었던 반면 상대방은 그저 거짓말이나 술수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재판이 이렇게 평면적인 게임이 될 때 판결서에는 진실 대신 방어적인 논리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변호사는 사업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생각할수록 상상력의 부족인 것 같습니다. 논리력과 판단력에 집중하는 사이에 보이는 현상에 빠지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는 다가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창의력은 결핍되었고 진실을 막고 있는 담을 허물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였습니다. 나는 사업에 대하여 법률자문은 할 수 있으되 사업을 직접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물고기를 놓치지 않는 법을 조언할 수 있어도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일까요.

이제 판단력과 상상력을 동시에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고 법률업무와 사업경영에도 유능해지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변호사가 논리전개에 익숙해질 때 판사는 선입견과 예단이라는 감정적 결론을 내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다른 과거의 경험만이 존재할 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3의 진실이 보인다면 증거조사의 범위를 넓혀주세요. 부탁합니다.

그리고 벽을 허무는 상상력을 주문합니다. 법 실력이 법전 밖으로 나와서 현실에서도 그 영역이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판단력과 상상력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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