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을미년을 보내고 대망의 병신(丙申)년 새해를 맞아 대한변호사협회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한다.

선거 때 북한의 도발행위가 있으면 보수세력이 결집하는데 중도세력도 동참하게 되어 진보세력이 긴장하거나 위축되게 된다. 4 ·13 총선을 앞둔 금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북한의 대형 도발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1월 6일 수소탄 핵실험의 강행이다. 그 사건으로 북한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으며 UN안보리에서는 그에 상응한 제재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미국은 무력시위로 우리나라에 대한 확고한 방위의지를 과시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북확성기 활동 재개와 아울러 중국의 북핵 불용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하는 등 강도 높은 대응을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안보리 제재에 동참할 것을 명백히 하고 있으니 북한은 사면초가인 셈이다.

우리나라와 우방은 북한이 최초 핵실험을 감행한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비슷한 대응을 해왔지만 실효성이 없었고 핵실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폭탄은 늘어만 가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전쟁도 불사한다고 공언하면서 핵개발이 주권 보호를 위한 자위책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 핵을 탑재한 미사일이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일본이 타격대상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며, 지금까지 북한의 비우호적 도발행위로 볼 때 결국은 우리나라를 겨냥한 핵개발로 보인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과거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로서 많은 인명 및 자유와 재산 피해를 입었지만 보다 더 큰 피해는 해방 후 동족으로부터 당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기간 중 수백만의 사상자·상이군경·납북자·전쟁미망인·고아·이산가족이 생겨났고 일부 경상도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그때 소위 꼴통보수세력 또는 친북좌파세력으로 분류될 수도 없는 중도적인 일반국민,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선량한 민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후에도 북한으로부터 수많은 해코지를 당해왔으니 KAL기 폭파,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아웅산 테러,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파 등 일일이 예거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러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제대국을 이룩하여 선진국과 당당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북한은 그 많은 지하자원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비롯한 군비증강에만 몰두하여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국상황인데도 우리 국민은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도와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안보에 대해서는 남의 일 대하듯 안이하고 무사태평이니,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인지 지나친 안보불감증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의 안보를 떠나 별도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법질서가 혼란스러워지면 북한당국에 오판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다. 6·25동란 무렵 우리나라는 수백개의 정당·사회단체가 난립하여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국회 프락치사건, 정판사 사건 등 공산당의 지하 암약도 치열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남한에 진격을 개시하기만 하면 남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이 대거 호응하여 즉시 전국이 공산화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한 한반도의 공산화는 이룩되지 않았고 북한당국은 남로당 총책 박헌영에게 그 사태 판단을 그르친 책임을 물어 숙청하였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는 문구(文句)가 있다.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낙양 장안 등 도시가 폐허가 되어갈 때 작시한 춘망(春望)이라는 5언율시(五言律詩)의 첫 구(句)인데 그 문구자체는 “나라는 망하였으되 산과 하천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창검(槍劍)과 활로 싸울 때에 한한 것이며, 핵전쟁의 경우는 전혀 가당치 않는 것이다. 국가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대전제라는 사실을 한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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