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막을 내렸다.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 쌍문동 이웃들의 정과 가족간의 사랑, 친구들간의 우정을 감성적으로 그려냈다. ‘응답하라 1988’은 그래서 따뜻했다. 1988년도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1989년도부터는 쌍문동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일까. ‘응답하라 1988’은 나에겐 각별하게 다가왔다. 드라마 속의 인물인 성보라는 내 또래로 보였다. 덕선, 택이, 선우, 정환은 90학번 녀석들이었다. 1990년도는 내가 대학교 4학년이었고, 녀석들은 대학 새내기들이었다. 내게 과거는 늘 아름답다. ‘응답하라 1988’은 아름답던 청춘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옛날 기억을 잘하냐”고 친구가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답을 못했다. 옛기억을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잘 몰랐다. ‘응답하라 1988’이후에 나는 그것이 ‘따뜻함’ 때문이었음을 알았다. 옛일은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옛날은 언제나 나에게 따뜻함을 주었다. 그 내용이 좋건 나쁘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릴 적 살았던 동네는 광주지방법원 부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중학교에 다닐 무렵까지 14년을 살았다.

어릴 적 동네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애들과 공차기를 하는 공터는 옛모습 그대로였다. 명규, 민이형, 웅이형, 승연이,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많은 친구들과 놀았던 동네 놀이터였다. 좁은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광주에 재판이 있는 날은 동네 곳곳을 둘러보는 일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내가 살던 집의 대문이 여전히 녹색 철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싶었다. 예전에 내가 이곳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고서는 집 구석구석을 다시 보고 싶었다. 광주재판이 있는 날, 나는 옛집이 있는 골목길부터 어릴때 다니던 등교길을 따라 마냥 걷는다. 할아버지 내외가 운영했던 만화집이 있었던 자리를 정확히 기억해 내기도 하고, 친구 녀석들과 놀았던 자리에서 그날들을 더듬어보기도 한다. 그 길 위에서는 싸웠던 녀석도 날 괴롭혔던 녀석들도 다 그리운 사람들이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온종일 온기를 느꼈다.

온기는 주고 받는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추억에는 언제나 스토리가 있는 법이다. 고2를 마치고 고3이 되기 전 겨울이었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큰매형과 함께 서울로 갔다. 엄마를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에 엄마는 세운상가 뒷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운상가 뒷골목을 나오면 동대문 시장 간판이 바로 보이던 곳이었다. 그곳 식당은 밤 11시 즈음에 파했다. 큰매형이 큰누나와 결혼하기 전, 함께 올라간 매형과 나는 밤 11시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겨울밤은 무척 추웠다. 식당일이 다 끝나고, 엄마가 일하던 식당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매형은 나란히 누워서 잤다. 한 사람이 눕기도 힘들었다. 문이 없는 사방이 뻥 뚫린 온돌방이었다. 평상시에는 손님이 식사를 하고 밤에는 엄마가 그곳에서 잠을 자는 곳이었다. 등만 따뜻하고 발이 시렸다. 세로로 누워 자면 한 사람만 잘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세 사람이 함께 누웠다. 세 사람이 가로로 누우니 발은 온돌방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래도 행복한 밤이었다. 엄마 품이 따뜻했다. 새벽 일찍 밥을 챙겨주던 엄마 모습이 선했다. 그리고 우리는 광주로 향했다. 충무로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 나는 곧잘 세운상가의 그곳 식당이 있는 골목길을 남몰래 찾곤 했다. 식당은 없어졌지만, 세운상가 골목식당의 온돌방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또 찾고 싶은 곳은 광명이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둥지를 튼 곳이다. 큰누나의 신혼집이기도 했다. 주인댁과는 대문이 따로 있어, 드나드는 것이 편했고, 반지하였다. 재래식 화장실이 현관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현관과 그곳 사이에 있는, 2미터 남짓 되는 그 공간에서 여름이면 돼지갈비를 구워먹었다. 맛있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조그마한 컵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에 3명이 함께 했다. 나는 학생이었고, 큰매형이 직장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해서 밤새 쌓아둔 컵더미를 가내공장에 배달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컵에 스티커를 붙이면서 밤새 행복했다.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함께’ 있을 때 관계가 따뜻해지는 법이다. 또 그것이 힘이 된다. ‘따로’가 대세가 되어 버린 요즘, ‘응답하라 1988’은 함께 사는 따뜻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해 준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1988’이 나에게 “응답하라”고 계속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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