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5. 29. 선고 2012다84370 판결

1. 사실관계

원고는 2009년 9월 5일 피고들이 공유하는 이 사건 건물 중 지하 1층, 지상 1층 내지 4층을 보증금 10억원에 임차하고, 2006년 1월 25일 이 사건 건물 중 지상 5층을 보증금 1억원에 임차하면서 계약 체결일 무렵 각 보증금을 피고들에게 지급하고 임차목적물을 사용하여 왔다.

원고는 2007년 12월 5일 피고들과 각 임차목적물의 보증금 액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간을 2008년 1월 1일부터 2009년 12월 31일까지로 정하여 다시 임차하는 것으로 계약(이하 ‘이 사건 각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들은 2008년 2월 13일 A에게 이 사건 건물과 부지를 매도하면서, 잔금 지급일인 2008년 5월 13일 A와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A가 인수하기로 약정하여 임대차보증금 11억원을 공제한 매매대금을 수령하고 같은 날 A에게 이 사건 건물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다. 원고는 2008년 6월부터 2010년 8월까지 A에게만 매월 임대료를 지급하고, A로부터 2009년 2월 9일 및 2009년 9월 17일 임대인 지위를 피고들로부터 승계하였다는 통지를 받고도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원고는 2009년 12월 28일 A로부터 이 사건 건물을 신탁받은 B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인도 소송에서 “이 사건 건물이 2008년 5월 13일 A에게, 다시 같은 날 B에게 각 양수되었으므로 B가 최종적으로 위 건물 부분의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였다”고 답변서에 기재하고 2010년 6월경 A에게 “2010년 7월 30일까지 임차 부분을 인도할 것이니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여 달라”는 취지의 통지를 하였다. 한편, 원고는 임차 부분을 인도한 후 피고들을 상대로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원심법원의 판단

원심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이 사건 건물의 매수인인 A는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 기간을 전후하여 원고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이행할 충분한 자력이 있었으므로, A가 매도인인 피고들로부터 이 사건 각 임대차계약의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기로 함에 있어, 임차인인 원고도 A가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거나 임대인의 지위를 인수하는 것에 관하여 적어도 묵시적으로나마 동의 또는 승낙을 하였다고 추인할 수 있으므로, 피고들이 여전히 임대인의 지위에 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3. 대상 판결

원고가 2008년 2월 29일경 A로부터 이 사건 건물을 매수하였다는 취지의 통지를 받은 뒤, 원고의 직원인 소외인은 피고 1을 찾아갔다가 그로부터 매수인인 A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여 피고 1에게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책임을 인정하는 각서와 매매계약서 등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귀속관계에 관한 문서를 요구하였으나 피고 1은 이에 응하지 아니한 사실, A는 이 사건 건물 부지 일대에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765억원을 대출받아 이 사건 건물 등을 매수하는 데에 대부분 사용하고 그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B와 사이에 부동산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2008년 5월 13일 B에게 신탁을 원인으로하여 이 사건 건물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준 사실, 원고는 A가 어떤 회사인지,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인수하였다는 취지의 통지를 받지도 못한 사실, 원고는 피고들이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귀속관계에 관한 문서를 보내지 아니하자 2008년 11월 18일경 피고 1에게 임차인과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소유권을 양도한 것은 계약 위반이라는 취지로 항의하면서 “2008년 11월 25일까지 보증금 및 임대료 등에 관한 계약내용을 알려 달라”는 취지의 통지를 하고, 2008년 12월 1일경 소유권 변경에 따른 임대보증금 등 법적 책임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는 것을 항의하면서 “2008년 12월 10일까지 원고의 임대보증금 및 임대료에 대한 서면통지를 요청한다”는 취지의 통지를 한 사실, 피고 1은 2008년 12월 9일경 원고에게 “임차인들의 보증금 전액을 공제한 나머지만을 매매대금으로 받았으므로 모든 권리와 의무는 A에게 승계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보낸 사실, 원고는 A에 대하여도 매매계약서 등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던 중 2009년 2월 9일경 A로부터 “A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였다”는 취지의 통지를 받았는데 당시 첨부된 매매계약서 사본에는 매도인인 피고들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던 사실, 이후 원고는 피고들이나 A로부터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귀속관계에 관한 어떤 문서도 받지 못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동산의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인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매도인을 면책시키는 면책적 채무인수가 아니라 이행인수로 보아야 하고, 면책적 채무인수로 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채권자 즉 임차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1. 4. 27. 선고 2000다69026 판결,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8다39663 판결 등 참조). 채무자인 매도인이나 제3자인 매수인은 임차인에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에 대한 매도인의 면책에 관한 승낙 여부를 최고할 수 있으며, 임차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확답을 발송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본다(민법 제455조). 한편, 임차인의 승낙은 반드시 명시적 의사표시에 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하여도 가능하다. 그러나 임차인이 채무자인 임대인을 면책시키는 것은 그의 채권을 처분하는 행위이므로, 만약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의 회수가능성 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의 어떠한 행위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대한 묵시적 승낙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된다.

이 사건의 경우, 첫째, 원고는 A에게 이 사건 건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자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피고들로부터 그 반환책임을 인정하는 각서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피고들은 A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기로 하였다는 답변만 계속하였고, 피고들이나 A는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인수에 대하여 원고로부터 승낙을 받으려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하였다.

둘째, A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금으로 이 사건 건물 등을 매수하는 방법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여 피고들로부터 이 사건 건물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은 당일 B와 사이에 부동산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그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으므로, 원고가 그 소유권이전등기 당시 A로부터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이 확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원고는 2009년 2월경까지도 피고들과 A 사이의 매매계약서 등을 통하여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귀속관계를 확인하려고 하였고, 그 결과 A로부터 받은 매매계약서 사본에는 피고 1의 말과는 다르게 피고들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후 피고들이나 A로부터 다른 문서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건물의 매도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이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넷째, A가 이 사건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바로 뒤인 2008년 6월경부터 임대차계약기간 만료일까지 원고가 A에게 매월 임대료를 지급하기는 하였지만, 원고로서는 이 사건 임차목적물을 사용하는 이상 임대료를 지급하는 것이 당연하고 원고가 피고 1의 요구에 따라 A에게 임대료를 지급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A에게 임대료를 지급하였다는 사정을 A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데에 원고가 동의하였다는 징표로 삼을 수도 없다.

다섯째, 원고가 B가 제기한 임차목적물에 대한 인도소송에서 피고들과 A를 거쳐 B에게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였다고 주장하거나 2010년 6월경 A에게 2010년 7월 30일까지 임차 부분을 인도할 것이니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여 달라는 취지의 통지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고가 자신에 대하여 인도소송을 제기한 B로부터라도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하여 한 것으로서 임차인이 통상 취할 수 있는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여섯째, 원고가 2009년 2월 9일경 및 2009년 9월 17일경 A로부터 임대인 지위를 피고들로부터 승계하였다는 취지의 통지를 받고도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각 통지에서 A가 원고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였음을 명시하지 아니한 이상, 원고의 위와 같은 태도를 두고 A가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것을 원고가 묵시적으로 승낙한 사정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

그밖에 원심이 거시한 나머지 사정을 모두 살펴보아도 A가 피고들로부터 원고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것을 원고가 묵시적으로 승낙하거나 동의한 것으로 보기에 부족하다.

그런데도 원심은 앞서 본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매수인인 A가 매도인인 피고들로부터 원고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것에 대하여 원고가 이를 적어도 묵시적으로나마 동의 또는 승낙을 하였다고 추인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4. 이 사건 판결의 의의

이 사건 판결은 부동산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인수는 면책적 채무인수가 아니라 이행인수로 보아야 하고 면책적 채무인수로 보기 위해서는 임차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판례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면서, 더 나아가 임차인의 승낙은 묵시적 승낙으로도 가능하나 만일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의 회수가능성이 의문시 되는 상황이라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관한 묵시적 승낙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판단하였다.

부동산을 거래할 때 그 부동산에 임차인이 있는 경우 대개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매수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인수하고, 임차보증금 액수만큼 매매대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 관행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매수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이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는 경우에는 명시적인 임차인의 승낙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에는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매수인이 변제하기로 한 내부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임차인에 대하여 매도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부담할 수도 있다. 부동산 거래를 하는 경우 매도인은 이와 같은 점들을 주의하여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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