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학년들에게 정치학개론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플라톤의 ‘국가론’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필독서로 부과했다. ‘국가론’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한계에 관한 책이다.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한다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훌륭하나 현실에선 ‘어리석은 다수’, 이른바 중우(衆愚)의 지배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이 ‘국가론’의 핵심이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배워 온 1년차 정치학도에게 “학식과 덕망이 풍부한 전제군주, 또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민주주의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플라톤의 논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군주론’도 ‘국가론’ 못지않게 현실적인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과 여우 같은 교활함이 군주의 덕목”이라고 설파했다. 비록 후세 사람들한테 ‘권모술수의 화신’이란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쾌하다. 정치는 말로만 떠들다 마는 이상이 아니고 나와 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적게는 마을 주민부터 많게는 국민 전체까지 한 집단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 지도자는 때로 실리를 위해 명분을, 다수를 위해 소수를 각각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제20대 국회의원을 뽑기 위한 4·13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정치 신인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는 등 후끈 달아오른 선거철 분위기 속에서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관과 검사장을 지낸 전관부터 순수 사법연수원 출신까지 다양한 배경의 변호사들이 앞다퉈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물론 법조인의 정계 진출이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굳이 ‘육법당(陸法黨)’이란 유행어가 생겨난 군사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당장 19대 국회만 봐도 중간에 재보궐선거로 들어간 이까지 포함해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무려 48명에 이른다. 대략 전체 의원의 16%가 넘는 수치이니 단일 직업으로는 가장 많은 듯하다.

법조인의 정계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무래도 긍정과 부정이 엇갈릴 것이다. 기자는 긍정에 아주 가까운 편이다. 우선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법률을 만드는 것이고, 우리 사회에서 법률에 가장 정통한 집단이 법조인이기 때문이다. 뭐 국회 의석 전체를 법률 전문가로 채울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일정한 숫자의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입법부 본연의 기능 수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법률가라고 다 윤리적이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무래도 다른 직종보다 준법의식이 투철한 점도 평가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19대 국회에 들어 법원의 유죄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 결정 등으로 금배지를 잃은 의원이 23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법조인 출신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법률 전문가인 만큼 적어도 헌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등의 준수에서는 남다른 분별력을 발휘한 결과로 풀이된다.

법조인 출신 의원을 선호하는 개인적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상당수 정치인에게 ‘낙선’은 곧 ‘실직’과 동의어다. 선거에 지는 순간 생계수단이 막막해지는 사람이 과연 정정당당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지, 금배지를 달고 난 뒤 공명정대한 의정활동이 가능할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예전에 변호사로 일하다가 법무장관에 발탁된 어느 법조인이 후배 검사들한테 소신껏 수사할 것을 주문하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장관에서 잘리면 변호사로 돌아가면 되고, 내 변호사 사무실은 아직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거에 지더라도 법률사무소를 다시 열면 될 변호사들이 아무래도 더 깨끗한 선거운동, 더 의연한 의정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총선에 출마하는 법조인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싶다. 비록 플라톤은 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했지만, 정치 신인들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은 그 자체로 엘리트다. 무의식중에 ‘마땅히 엘리트가 이끄는 대로 국민은 따라와야 한다’고 여기기 쉽다. 이런 오만은 금물이다. 플라톤은 정치를 하려면 먼저 철인(哲人), 곧 철학자가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법조인들은 기존의 엘리트 의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삶의 현장에서 대중과 만나며 그들을 감화시킬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꿔야 한다.

마키아벨리 같은 유연함도 꼭 필요하다. 흔히 법률가들은 ‘법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법률만능주의에 빠지기 쉽다.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빌리면 “사자처럼 용맹하기만 한” 지도자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최근 판사들에게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메마른 법률가가 돼선 안 된다”고 당부하며 “합리적 이성만큼 감정과 감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세상만사를 법의 잣대로만 재단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균형 잡힌 정무감각을 갖추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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