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아무런 말이 없다 -

무슨 바둑이나 운동경기 토너먼트 성적이 아니다. 1심에서 승소하고 나서 2심에서 패했는데, 3심인 대법원이 아무런 말이 없는(無) 경우를 말한다. 사실심에 충실하고 1심에 모든 것을 집중하자고 해 놓고선, 항소심에 올라가면 왠지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거의 모든 입증을 다해서 다 끝났다고 더 이상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항소심에서 갑자기 조정을 권유하기도 한다. 1심에서 어렵게 해서 기껏 승소를 해 놨는데, 항소심에서 별 다른 이유 없이 결과가 바뀐 경우에는 참으로 황망한데, 그렇다고 대법원이 최후의 보루는 아니었다.

[사례1] 부동산교환계약을 맺어 상호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고 완료했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소유권이전등기말소등기청구소송과 사기죄의 형사고소를 한다. 사기죄로 기소되긴 하였지만, 1심에서 고소인을 비롯한 계약체결 당시 있었던 모든 사람을 증인으로 신문하고 무죄를 받았다.

1심 민사재판은 형사사건과 무관하게 판단을 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계속 형사사건 결과를 보자고 기일을 끌더니 형사 1심 판결결과 후에도 고소인인 원고는 검찰항소가 되어 있으니 형사항소심 결과를 보고 판단해 달라고 또 요구한다.

형사항소심에서는 갑자기 고소인이 항소심 재판부장과 같은 고등학교, 고등부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였고, 뜬금 없이 고소대리인이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전화를 해서는 “항소심에서는 결과가 뒤바뀌어 유죄판결이 날 수도 있으니, 서로 교환된 부동산을 원상회복해 놓고 합의하자”고 한다.

항소심 재판에서는 부장(나중에 대법관이 되었다)이 계속 “기록을 아직 검토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형사항소심 재판은 대법원에서 잘 바뀌지 않으니 무서운 것”이라고 하면서 “고소인과의 합의여부를 잘 검토해 보라”고 하고, 법정에 출석한 고소인의 아들을 갑자기 증인으로 채택하더니, 결국 나중에는 집행유에도 없고 법정구속도 없이 징역형을 선고해 버린다.

더디지만 유리하게 진행되던 민사 1심은 갑자기 형사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자 이제는 갑자기 패소 분위기가 짙고, 결국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지만, 징역형 선고에 계속 밤잠을 설치던 의뢰인은 고소인과 합의를 하고 만다. 고소인의 대리인이 고등법원 재판과정에서 전화를 하여 충고 아닌 충고를 한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사례2] 민사본안과 같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심리되는 단행가처분의 일종인 영업금지가처분 사건. 어렵게 목돈을 마련하여 조그마한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었는데, 옆의 수분양자가 갑자기 커피를 팔지 마라면서 영업금지가처분신청을 하였다. 가처분신청이 기각되었고, 항고를 하였으나 역시 이것도 기각되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또 민사본안으로 영업금지를 청구하여, 대법원까지 갔다. 물론 대법원에서도 영업금지청구는 기각되었다. 의뢰인이 소송비용확정신청을 하여 소송비용을 받으려고 하였더니 상대방은 청구이의의 소까지 제기하면서 버텼다. 그렇지만 완승이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자신의 점포에 세 들어온 임차인 명의로 다시 영업금지 본안소송을 제기하였고, 사실관계가 달라질 것이 없으니, 1심에서도 당연히 기각되었다.

그런데 2심에서는 갑자기 영업금지청구를 받아들였고, 여기에 대해 의뢰인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6개월간 상대방의 답변도 없이 심리를 하곤 7개월째 되는 날에 판결선고기일을 잡아 통지하였고, 그 선고기일 6일 전에 상대방이 답변서를 내었다. 내심 상고가 받아들여지길 기대하였으나, 의뢰인의 상고는 기각되었다.

3년 가까이 두 차례에 걸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면서, 총 9건의 소송에 연루되면서 의뢰인의 삶과 영업은 피폐해져 버렸다. 임차인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판결이 달라진 이유에 대해서 단지 “당사자가 다르고 제출된 공격방어방법에 차이가 있어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모순, 저촉되지 않는다”라고만 하였다. 이러니 ‘3세판’이 아니라 ‘4세판’, ‘5세판’이라도 계속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판결을 얻게 되고,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례3] 회사에 대한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되어 처벌받은 대표이사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대법원까지 상고를 하여 회사의 손해를 모두 보전하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위 회사는 대표이사와 공범으로 기소중지된 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면서, 위 기소중지된 자와 부동산 거래를 한 의뢰인에 대해 사해행위 및 통정허위표시를 주장하며 기소중지된 자의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를 대위청구하였다.

1심은 형사판결에서 손해를 모두 보전하여 놓고 민사소송에서 손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되기 때문에, 피보전권리가 없다고 하여 각하하였고, 사해행위 또한 제척기간 도과로 기각되었으며, 통정허위표시 여부는 피보전권리가 없기 때문에 판단할 필요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2심에서는 위 회사의 손해가 모두 보전된 것이 아니라 아직 손해가 있다고 하면서 피보전권리를 인정하였고, 제척기간 도과된 사해행위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고, 온갖 추정하는 간접사실에 의해 통정허위표시라고 판단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라고 하였다. 사실, 회사의 손해가 보전된 것은 형사사건 내내 명백한 것이었고 그걸로 인해 집행유예도 받았던지라, 원피고 모두 항소심 또한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고, 원고도 이에 대비해 공시송달 중인 피고를 상대로 항소심 판결선고를 앞두고 또 다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결과는 양 당사자의 예상을 뒤집었다.

이에 대해 의뢰인은 상고를 하였으나, 상고이유서를 내고 약 2달쯤 후에 상대방이 답변서를 냈고, 여러 가지 법리적인 쟁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상대방이 답변서를 내고 기다렸다는듯이 12일만에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고 말았다. 형사소송에서 제출된 증거들과 동일한 증거들이 민사소송에서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과 달리 회사의 손해가 보전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다. 이러니 소송 당사자들이 법원의 판결에 납득을 하겠는가.

1심과 2심의 판결이 달라지거나 동일한 사실관계의 형사판결과 민사판결이 달라지면 적어도 대법원은 이에 대해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위 사례들의 원고는 모두 재력가들이었다. 결국은 이런 대법원의 무대응이 사법불신으로 이어지고, 국민들로 하여금 끝까지 상고심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고집을 갖게 하고, 상고심에서 대법원의 답변을 들으려면 적어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대법원 판결이 나도 다시 재심으로 다투려고 하면서 대법원판결마저도 믿지 못하게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3심제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4심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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