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의 수난사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를 시작으로 여러 번 영화화 되었고, 연극무대에도 올려졌다. 작년에는 20대 한국인 청년이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에서 뮤지컬로 공연하여 나름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큰 규모의 상업영화로는 선을 뵈지 못했다.

친한 감독에게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위안부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 어려서 일본 가정에 입양된 조선인이 일본군 의무병으로 필리핀 전선에서 복무하며 겪은 위안부가 소재이다. 오히려 전개의 축은 종전 후 미국에 정착한 그가 의료 기구를 판매하며 홀아비로 살다가 한국인 딸을 입양하고 사춘기의 그 딸과 겪는 갈등이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1999년 미국의 문학상을 휩쓸었던 한국계 작가 이창래의 소설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가 묘사하는 내용이다. ‘제스처 라이프’를 읽던 중 감독에게 바람을 잡았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고 필리핀과 미국에서 촬영을 하자 … 가능하면 네덜란드나 중국까지 끼워 넣자 … 위안부를 정면에 두지 말고 비껴 배치하여 현실감을 높이자 … 이런 무거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낼 감독은 많지 않다.” 이미 번역소설을 읽었다던 감독은 얼마 뒤 영문으로 다시 읽었고 이창래와는 미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고 전해 왔다.

국제협상은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고 한다. 협상대표는 상대국과 교섭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국내 세력을 설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가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일관성도 책임감도 잃게 되니 왕조시대의 외교가 진짜 외교라는 설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양자투자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은 ‘스크린쿼터’가 암초가 되어 실패하였다. 미국영화협회(MPAA)는 미국 정부를 압박하여 스크린쿼터 ‘폐지’를 BIT에 연계하였고, 한국 영화계는 ‘스크린쿼터 사수 비대위’를 구성하고 ‘한국영화 죽이기 음모 규탄대회’며 ‘한국영화 장례식’ 등 감성 이벤트로 분주하였다. 미국은 폐지 요구에서 물러나 ‘18일’ 축소로 입장을 정리하였으나 우리 영화인들은 결사항전의 태세만 굳혔다. 그 시절 정부가 영화인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BIT를 체결하여 한국경제의 근력을 더욱 튼튼히 했다면 현재의 경제침체 국면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공상을 해 본다. 한미 FTA로 스크린 쿼터를 반 토막 냈지만 영화산업이 더 잘 굴러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2012년 정권을 다시 잡은 아베(安培)는 “고노(河野) 담화를 재검토 한다”고 선언하였다. 1993년의 미야자와(宮澤喜一) 정부 시절 고노 내각관방장관의 담화는, 위안소 설치·관리에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한 점, 조선반도에서의 위안부 모집이 전반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점,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할 것이라는 점을 내용으로 한다. 고노 담화는 종전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사회당 출신의 총리 무라야마(村山) 담화로 이어졌다. 무라야마는 식민지 침략으로 아시아인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으니 ‘통절한 반성’과 ‘진심의 사과’를 한다고 발표하였다. ‘고노’와 ‘무라야마’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갑자기 반성을 해 댄 것은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도쿄지방재판소에서의 소송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도하는 수요 집회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일본 정부조사단이 서울에서 생존자를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였다. 일본 정부가 관여하였음을 보여주는 공문서를 공개한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 등 지식인의 역할도 있었고, 당시의 일본 집권당이 좌파연립정부였다는 점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겠다.

아베가 태도를 돌변하였다. 무라야마 담화의 재판(再版)이 현재 일본 정부에서 튀어 나오니 잠시 멍해진다. 늘 그렇듯이 시민사회의 반응은 극단으로 갈린다. 양면게임에서 실패한 것인지 양면게임 그 자체가 불량품인지 혼란스럽다. “오바마가 아베의 팔목을 꺾었다더라”는 풍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양국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합의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수난의 역사를 잊을 수 없다. 역사를 기록하기에 영화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상업영화에서 위안부라는 소재는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대상이지만, 되바라지지 않은 감독이 진중하게 작업한다면 전시(戰時) 성노예의 인류사적 폭력성은 오래오래 무거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역사의 기억에 ‘불가역적인’ 사회는 지는 게임을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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