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기저기에서 아기들이 태어나듯이, 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간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고 하여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더 살고 싶어도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상을 떠나가야 한다. 태어 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의 외모나 성격, 그리고 지능 등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가 없다.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인간에게만은 삶이 너무나도 버거울 때 그 고통을 스스로 중단시키는 극단적인 방법으로써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 자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자살은 사적인 상황에 따른 매우 개인적인 선택이라 그 누구도 단언하여 비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몇년 전 영화배우 최진실씨가 자신의 두 아이를 두고 자살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더니, 이어 동생 최진영씨가 자살하였고, 그 남편인 조성민씨도 2013년 초 자살하여, 최진실씨를 둘러 싼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망자가 지니고 있던 슬픔과 고통의 짐을 고스란히 산 사람에게 넘겨주고 갔기에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원망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재산과 학력, 외모를 갖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본다. 반면에 풀빵 하나에도 온 가족이 감사해하며 웃음이 떠날 줄 모르는 가정도 찾아 볼 수 있다.

한번 태어나면 어차피 떠나야 하는 인생길인데 길고 긴 인생을 내내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걸어갈 수는 없다. 목숨을 내려놓는 자살을 선택하기 보다는 마음 속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행복의 의미를 자그마한 것에서 찾아내어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근심거리를 잔뜩 짊어지고 고통스럽다하지 말고,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근심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모두 다 욕심과 기대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선현들은 욕심이 없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무욕무환(無慾無患)이라 했다. 옳은 말이다. 지난해 제16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강석경이 “예술도 인생도 결국 내려놓음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 말은 삶의 깊은 성찰 끝에 내려진 지혜로운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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