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변호사로 일을 막 시작하면서 주변 선배 변호사님들을 찾아 뵙고 인사드릴 적이 있었다. 선배님들의 덕담과 충고를 듣고 마음에 새기는 좋은 자리로 기억한다. 여러 말씀들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덕담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나 변호사, 앞으로 변호사 일을 하면서 세 가지를 조심하세요. 정치한다고 나서지 말 것, 여윳돈을 섣부르게 주식에 투자하지 말 것, 여자와 위험한 관계에 빠지지 말 것. 이 세 가지만 조심하면 오랫동안 변호사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경제적 감각은 원시적 불능이라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할 엄두를 낸 적이 없고, 지금의 아내 하나 만으로도 벅찬(?) 필자이기에 위 충고에 일응 공감이 갔다.

그런데 정치는? 필자는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정치는 거대 담론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본격 정치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플레이어’로 뛰는 사람을 이해하는 편이라 ‘정치한다고 나서지 말아라’라는 조언에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배 변호사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인 판단력을 꼽았다. 그러면서 베버는 열정, 그러니까 권력을 향한 야심은 반드시 필요하고 정치가로서 정상적인 욕망이지만 이러한 야심이 전적으로 대의를 위한 것이거나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이 결여된,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정치가의 신성한 정신에 죄악이 깃든다고 말했다.

아마도 선배님의 충고는 베버의 위 말과 맥락을 같이 할 것이다.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소명의식 없이 헤게모니의 쟁투 한복판에 뛰어든다는 것은, 판단력을 상실한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념과 대의에 대한 갈망이 자신의 권력욕과 일정정도 방향이 맞다면 그는 훌륭한 정치가가 될 것이고 성공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될 것임은, 필자와 같이 사회 경험 없는 초짜 변호사도 아는 사실이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이른바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다. 14대 국회에서 8.4%에 불과하던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비중이 19대에서는 20%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나아가 율사 출신 대통령도 있었다. 아마도 직업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항상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나아가 분쟁을 조정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과 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민들에게 율사 출신이라는 점은 사회적 명망가로서 매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권자에게는 아직까지 법률가는 사회적 인텔리로서 ‘품질보증서’를 가진 출마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변호사도 많아서 다양한 사회 분야에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율사 출신 정치인이 늘어나면 특정 영역의 집단, 그것도 중산층 이상을 과대 대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대표성 측면에서 좋지 않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법조인 특유의 경직된 사고가 창의와 유연함이 요구되는 21세기 정치인의 자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올해 봄은 국회의원 총선거로 뜨거울듯하다. 베버는 한마디 덧붙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변호사와 민주주의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변호사가 정치에 도전하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부터 있었을 만큼 유구한 일인가 보다. 비록 위험하긴 해도 주식으로 큰돈을 만지거나 이성과 행복한 연애를 하면 당사자만 행복하지만, 훌륭한 정치는 정치인 자신뿐 아니라 시민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기에 주식이나 연애보다 근사하다. 4월 총선에 도전하는 소명의식 있는 변호사님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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