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3두987 판결

I. 서론

행정청의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이 존재하는 경우에 어느 처분을 취소소송의 대상으로 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종래에는 행정청이 원처분을 한 후 이를 감액하거나 증액하는 변경처분을 하는 경우와 같은 경정처분(更正處分)에 관한 논의가 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사업자에게 과징금 부과처분(선행처분)을 한 뒤 다시 자진신고 등을 이유로 과징금 감면처분(후행처분)을 한 사건에서 선행처분을 일종의 ‘잠정적 처분’으로 보고 잠정적 처분은 종국적 처분이 있으면 이에 흡수되어 소멸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 이는 기존 경정처분에 관한 논의나 판례와는 다른 것이어서, 여기에서 잠정적 처분이 강학상 잠정적 행정행위를 의미하는 것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II. 대상판례의 내용

1. 관련규정

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2013. 7. 16. 법률 제1193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제22조의2 제1항은 부당한 공동행위의 사실을 자진신고한 자 또는 증거제공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협조한 자에 대하여는 제21조(시정조치)의 규정에 의한 시정조치 또는 제22조(과징금)의 규정에 의한 과징금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고, 제71조(고발)에 따른 고발을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 사실관계

(1) 원고는 원고와 학교법인 00학원, 00유업이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2010년 1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현장조사를 받게 되자, 2010년 3월 22일 자진신고와 아울러 과징금에 대한 감면신청을 하였다.

(2) 원고가 자진신고를 할 무렵은 이미 담합에 가담한 3개 사업자 중 00유업이 자진신고를 한 후로서, 원고는 2010년 7월 15일경 다른 공동행위자들에게 정보교환이나 모임 등 일체의 공동행위를 중단한다는 취지의 통지를 하였다.

(3)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8월 3일경 원고가 제출한 증거자료가 감면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에게 2순위 조사협조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서면을 교부한 다음, 위 조사협조자 지위확인을 취소하지 아니하고 2011년 6월 9일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에 따라 과징금 납부명령(이하 ‘제1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가, 2011년 7월 18일 원고가 2순위 조사협조자라는 이유로 당초 과징금을 50% 감액하는 처분(이하 ‘제2처분’이라 한다)을 하였다.

(4) 원고는 제1처분 및 제2처분 모두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5) 이에 대하여 원심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의 청구에 대하여, 제2처분이 자진신고에 의한 감면까지 포함하여 처분 상대방인 원고가 실제로 납부하여야 할 최종과징금을 결정하는 종국적 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고, 제1처분은 종국적 처분을 예정하고 있는 중간적 처분에 불과하여 제2처분에 흡수되어 소멸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소 중 제1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부분은 이미 효력을 잃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서 부적법하다고 보아 이 부분 소를 각하 하였다(서울고법 2012. 11. 28. 선고 2011누46387 판결).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공동행위를 행한 사업자로서 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2013. 7. 16. 법률 제1193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제22조의2에서 정한 자진신고자나 조사협조자에 대하여 과징금 부과처분(선행처분)을 한 뒤,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5조 제3항에 따라 다시 그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사건을 분리하여 자진신고 등을 이유로 한 과징금 감면처분(후행처분)을 하였다면, 후행처분은 자진신고 감면까지 포함하여 그 처분 상대방이 실제로 납부하여야 할 최종적인 과징금액을 결정하는 종국적 처분이고, 선행처분은 이러한 종국적 처분을 예정하고 있는 일종의 잠정적 처분으로서 후행처분이 있을 경우 선행처분은 후행처분에 흡수되어 소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 선행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는 이미 효력을 잃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 부적법하다”고 하였다.

4. 논의점

대상판결의 원심은 제1처분을 ‘중간적 처분’이라고 표현하고 대법원은 ‘잠정적 처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① 제2처분은 자진신고에 의한 감면까지 포함하여 처분 상대방인 원고가 실제로 납부하여야 할 최종과징금을 결정하는 종국적 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고, ② 제1처분은 종국적 처분을 예정하고 있는 잠정적 처분에 불과하여 제2처분에 흡수되어 소멸된다는 것으로 같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① 제1처분을 제2처분을 ‘예정’하고 있는 처분으로 본 점, ② 제2처분은 최종 납부할 과징금을 정하는 ‘종국적’ 처분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③ 그리고 종국적 처분이 있으면 제1처분은 소멸되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판례의 논리는 이른바 종래의 경정처분에 관한 판례와는 입장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중간적 처분’ 혹은 ‘잠정적 처분’이 ‘경정처분’과는 다른 ‘잠정적 행정행위’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III. 대상판결의 검토

1. 경정처분의 경우

예컨대 행정청이 과세처분을 한 후 이를 감액하거나 증액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 당초처분에 대하여 감액 또는 증액된 처분을 경정처분(更正處分)이라 한다.

이 경우 당초처분과 경정처분 가운데 어느 것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가에 대하여는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판례는 감액경정처분은 ① 당초처분의 일부 효력을 취소하는 처분으로서, 소송의 대상은 경정처분으로 인하여 감액되고 남아 있는 당초처분이라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제소기간의 준수 여부도 당초처분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두16403 판결). 그리고 ② 증액경정처분의 경우, 당초처분은 증액경정처분에 흡수되어 독립한 존재가치를 상실하여 당연히 소멸하고, 증액경정처분만이 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하고 있다(대법원 2000. 9. 8. 선고 98두16149 판결).

2. 잠정적 행정행위의 경우

잠정적 행정행위 혹은 가행정행위(假行政行爲)는 종국적인 행정행위를 하기에 앞서 잠정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에 대한 사후심사의 유보 하에 잠정적으로 행정법관계를 규율하는 행위를 말한다. 잠정적 행정행위는 유보된 행정행위라고도 부른다.

잠정적 행정행위는 최종적인 확정결정까지만 효력이 있다. 따라서 최종적인 결정이 있게 되면 잠정적 행정행위는 이에 대체되어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독일에서는 이와 같은 잠정적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그 법이론적 구조, 법적 허용성, 한계 및 현실적인 필요성 등에서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고, 특히 행정행위는 ‘종국적 규율’이기 때문에 이 점에서 잠정적 행정행위의 행정행위로서의 성질에 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다. 잠정적 행정행위는 행정행위가 갖추어야 할 ‘규율의 종국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정행위로서의 성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논리적이라 판단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행정행위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아무튼 잠정적 행정행위 자체가 처분성이 인정되는가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종국처분이 있게 되면 잠정적 행정행위는 효력이 상실된다는 점은 학설들이 일치하고 있고, 이 경우 항고소송은 종국처분을 대상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3. 결론

대상판결은 제1처분이 제2처분에 흡수되어 소멸되었다고 하고 있는 점에서 ‘잠정적 처분’의 의미를 강학상 잠정적 행정행위로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에 기존의 감액경정처분의 논리에 따르면, 제2처분은 제1처분의 일부 효력을 취소하는 처분으로서, 소송의 대상은 제2처분으로 인하여 감액되고 남아 있는 제1처분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판결은 잠정적 행정행위로 본 첫 번째 판례로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잠정적 행정행위와 관련해서, 대상판결에서 제1차 처분을 잠정적 행정행위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려면, 제1처분 당시 이미 이 처분이 제2의 종국처분에 대한 예비적 처분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관련규정인 공정거래법 제22조의2 제1항의 규정이 제1차 과징금처분을 ‘예비적’으로 하고 이에 대하여 반드시 제2차로 ‘종국적’인 과징금의 감경 또는 면제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 이 사건에서 제소기간이 문제가 되었다면, 제2처분을 경정처분으로 보는 경우와 제1처분을 잠정적 처분으로 보는 경우에 차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판례를 계기로 하여 향후 잠정적 행정행위의 경우 그 법적 허용성, 요건, 한계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이 경우 잠정적 행정행위도 처분인지, 항고소송에서는 어떤 처분을 대상으로 하여야 하고, 이 경우 제소기간은 어떤 처분을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도 논의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대상판례는 ‘잠정적 처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첫 판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그 의미하는 바가 잠정적 행정행위인가가 분명하지는 않다고 생각되지만, 이 판례를 계기로 잠정적 행정행위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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