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9월 11일생 길원옥 할머니는 만 12세이던 1940년 평양에서 만주 하얼빈으로 끌려갔다. 일본군들과 함께 지내다 성병에 걸려서 이듬해 귀국했는데, 1942년 다시 중국 석가장으로 끌려갔다. 광복을 맞아 인천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정상적인 결혼 생활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세상에 사람으로 나서 제일 문제는 대를 잇는 거라며 양자를 들였다.

길 할머니는 “혹시나 누가 과거를 알게 될까봐 조마조마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길 할머니는 50년 넘게 잠꼬대로도 과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성토하는 장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작 이야기할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그 혼잣말을 들은 며느리가 깜짝 놀라 캐물어서, 길 할머니는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날밤 세 식구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길 할머니는 용기를 냈다. 2004년엔 외교통상부의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틈에서 가장 건강하고, 나이가 제일 어리다시피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일본 정부가 준다는 위로금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배상금을 준다면 받겠지만, 위로금이라는 건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법적 책임과 진정한 사죄가 중요하다고 했다. “일본을 다 준대도 돈으로는 해결이 안 되지요. 일본을 다 준다 한들 저희의 일생을 찾겠어요? 못 찾습니다.”

쥐구멍 찾고 싶은 인생이었지만 후손들을 위해 나왔다며 시종 꼿꼿하게 대답하던 길 할머니는 함부로 맺어진 한일청구권협정을 상기하는 대목에서 울어 버렸다. 길 할머니는 국감 출석 전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 외무성을 방문했는데, “1965년에 다 해결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울지 않아야 할 곳에서 눈물밖에 안 나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국정감사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이날 피감기관인 외교통상부의 장관으로 출석한 이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이었다. 그는 길 할머니의 증언을 묵묵히 듣고는 “한일청구권협정 해석을 둘러싸고 견해차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앞으로 일본 측으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는 방향으로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묻는 의원에게 “일본이 솔직하게 인정을 안 하고, 사죄를 안 하고, 필요한 배상을 하는 자세가 부족한 것”이라고 명쾌히 밝히기도 했다.

11년 전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던 길 할머니는 아직 생존해 있다. 매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해 후원금을 냈고, 각국 국회의원 청문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알려 2008년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했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던 날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표지석에는 그가 직접 쓴 문구가 새겨졌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미운 게 일본이지, 거기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지난 28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이 한일 양국 간에 타결됐다는 소식을 갑자기 언론으로 접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모여 지내는 쉼터에 정부 인사 한 명 찾아오지 않았었기에, 할머니들은 타결이란 말을 황망해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이 어딜 향하는지 모호했다.

국제사회가 이야기하던 책임자 처벌, 일본 국민 대상 교육, 피해 당사자에 대한 직접 사과 중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었다. 그나마 일본 총리의 전화를 받은 건 할머니들이 아닌 대통령이었다.

일본을 다 준대도 해결이 안 된다던 길 할머니에게 일본 정부가 내건 돈은 10억엔이었다. “1965년에 끝난 이야기”라며 냉대하던 그들이었다. 이름 거창한 ‘치유금’이 위로금인지 배상금인지는 길 할머니가 잘 안다. 그가 받을 리 만무한 돈이지만 한국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를 수용키로 했다.

일본의 배상이 본질이라던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이번 합의로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개선되기를 희망한다”는 성명을 냈다. 50년 전에도 이번에도, 피해 당사자는 협상 테이블에 없었다.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은 타결을 발표한 다음날 빵과 음료수를 들고 쉼터를 찾아왔다. 길 할머니 옆에 있던 이용수 할머니가 들어서는 임 차관을 보고 “어느 나라 외교통상부냐”고 물었다. 바닥에 앉은 임 차관이 이용수 할머니를 이수용 할머니로 불러 가며 “올해가 가기 전에 해결을 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차관이 말하는 동안 길 할머니는 허공을 응시한 채 별다른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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