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2014년 12월 10일, 일본최고재판소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약칭 ‘재특회’)’의 헤이트스피치를 ‘민족차별’로 인정하고 고액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각지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소송을 6년간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이번 판결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건은 2009년 12월, 2010년 1월, 2010년 3월, 3차례에 걸쳐 교토조선제일초급학교 주변에서 ‘재특회’ 회원들이 헤이트스피치 선전활동을 한데 대하여 학교법인이 원고가 돼 ‘재특회’ 회원 9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원고 측은 손해배상금 총 3000만엔(선전활동 1회당 1000만엔)과 학교주변 200미터 내에서 선전활동금지를 요청했다.

하급심을 담당한 교토지방재판소 제2민사부는 2013년 10월 7일 총 1226만3140엔의 배상(그 중 무형손해에 대한 배상액 1100만엔)을 인정하고, 학교 주변 반경 200미터 내에서 선전활동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특회는 항소하였으나 2014년 7월 8일 오사카고등재판소가 항소를 기각했고, 재특회가 상고까지 하였으나 2014년 12월 10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불수리)되면서 획기적인 1심판결이 확정됐다.

2. 사건의 세부

(1) 첫 번째 습격과 법적대응

2009년 11월 24일 재특회 홈페이지에 선전활동 예고동영상이 게재됐다. 학교에서는 습격예고 동영상을 보고 교사회의를 열었지만, 당시 재특회는 사회적인 인지도도 없었던 데다, 선전활동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교사들은 불안과 걱정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악몽의 그날, 2009년 12월 10일 오후 1시, 재특회 소속 10여명은 재일동포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바로 앞에서 1시간 동안이나 “김치 냄새 난다” “일본에서 나가라 멍청이” “이건 스파이 양성 기관” “스파이의 아이들” “약속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는 약속은 성립하지 않는다” “개가 더 착해” 등의 온갖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교사 내에서는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이덴티티의 살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 발생 당시 나는 변호사 등록을 막 마친 신참변호사였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즉시 변호인단을 꾸려 ‘재특회’에 대한 법적조치에 들어갔다.

게다가 사건 당일 학교 측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들은 재특회 측의 차별적 발언과 학교소유물 파괴행위를 제지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고, 오히려 소란을 알고 달려온 동포들을 막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경찰의 묵인 하에 재특회의 만행은 1시간이나 이어졌다.

사건이 있은 후 수년이 지나 형사재판부는 이들 재특회 회원들에 대한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죄명은 모욕죄, 기물손괴, 영업방해 등의 극히 가벼운 것이었다.

경찰은 그날 그 자리에서 체포가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의 범죄 행위를 수수방관했고, 검찰은 사건 직후 고소를 하려하자 접수를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겨우 고소접수가 된 이후에도 약 6개월동안이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관계자들은 우리에겐 인권조차 없다며 깊이 절망했다.

(2) 이어지는 2차 습격과 3차 습격

그런 사이에 2010년 1월 14일 ‘재특회’의 두번째 습격이 일어났고 학교는 또다시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날 재특회 회원들은 확성기가 달린 차량에 헬멧 등을 쓰고 나타나 약 2시간 동안이나 “뻔뻔한 한국인을 일본에서 쫓아내자” “일본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아 간 비열하고 흉악한 한국인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전후 치안이 정비되기 전에 한국인들은 금품 약탈, 강간, 은행습격, 살인을 일삼았다”는 등의 차마 들을 수 없는 흑색선전을 진행했다. 이어 2010년 3월 16일 세 번째 습격을 하겠다는 예고가 재특회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3월 24일, 그제서야 교토지법은 재특회의 선전활동을 금지하는 가처분명령을 내려줬다. 어린 학생들, 보호자와 학교 관계자들이 안심한 것도 잠시, 재특회 회원들은 법원의 명령마저 무시한채 당당히 세 번째 습격을 감행했다.

3월 28일, 재특회는 “개가 더 착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바퀴벌레, 구더기는 한반도에 돌아가라” “때려 죽여라, 센진(한국인을 비하하여 표현하는 차별용어) 죽여라” “좋은 한국인이든 나쁜 한국인이든 죽여라” “가스실로 한국인을 처넣자” 등의 헤이트스피치를 거듭했다.

게다가 재특회는 이 세번의 차별선전활동을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차별을 조장·확산했다. ‘재특회’가 ‘넷 우익’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3) 고뇌 끝의 결단

공포에 빠진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를 무서워하거나, 자기가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났 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뜨리거나, 잠자리에 야뇨를 하는 등 갖가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와 변호인단은 할 수 있는 바를 다 했음에도 재특회의 만행이 멈추지 않자, 결국 소송을 결심하게 되었다. 학교를 원고로 해 재특회에 민사손해배상청구를 하자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 방법은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커보였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재판을 걸어도 1심판결까지 3년에서 5년쯤이 소요되는 바, 그 사이 재판과정을 겪어야 하는 당사자들의 부담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를 깊이 입은 어린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재판 과정에서 그 악몽의 사건을 거듭 되새겨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또 그렇게까지 힘든 작업을 하고 소송을 한들 보수적인 일본법원에서 기대하는 판결을 받을 수나 있을 것인지….

이제까지 일본판례를 보면, 일반적인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넘어서 소수자 특히,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살게 된 소수자 후손들에 대한 ‘민족차별’에 대해 얼마나 바른 판결을 내려줄지도 회의적인 상황이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2009년에는 ‘재특회’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헤이트스피치’라는 말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자와 학교관계자, 변호인단은 수차례 논의와 고심 끝에 과거부터 되풀이 되어온 차별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2010년 6월 28일 마침내 민사재판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실로 고뇌 끝의 결단이었다.

3. 판결내용 소개

앞서 언급한 판결 중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몇개 소개한다.

(1) 인종차별조약에 근거한 법원의 판단

일본의 법원은 인종차별철폐 조약상 법률을 동 조약에 적합하게 해석할 책임이 있다 … 민법 제 709조(불법행위)와의 관계에서는 … 인종차별행위에 의하여 무형손해가 발생한 경우 인종차별철폐조약 제2조 제1항 및 제6조에 의해 가해자에게 명할 수 있는 배상액은 인종차별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 및 구제가 가능한 액수로 정하여야 한다.

(2) 인종차별 해당성의 인정

재특회의 세 차례에 걸친 선전활동 및 동영상 공개는 명예훼손, 업무방해에 해당할 뿐 아니라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사회에 널리 알릴 의도를 가지고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발언을 한 것이며 재일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출신에 기초한 배제이며 재일한국인의 평등한 입장에서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공유를 방해할 목적을 가진 행위임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인종차별철폐조약 제1조 제1항의 인종차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민법 제709조 ‘불법행위’에 해당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위법성을 띤다.

(3) 고액배상의 근거

무형손해를 금전으로 평가할 때 피해의 심각성과 침해행위의 위법성의 정도가 고려된다 … 명예훼손 등의 불법행위가 동시에 인종차별에도 해당할 경우 혹은 불법행위가 인종차별을 동기로 할 경우에도 인종차별철폐조약이 민사법의 해석적용에 직접 영향을 미쳐 무형손해의 배상액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4) 피고의 반론에 대하여

“‘위법성 혹은 책임이 조각되는 논평, 의견의 표현행위일 뿐’이라는 반론은 표면적인 구실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영상 자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인을 규탄하는 구실을 찾아 자기들의 차별활동을 사회에 확산할 목적으로 시위활동을 감행하였다. 피고는 의견의 표명이라 주장하지만 의견이나 논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욕적인 발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만큼, 법적인 면책사유를 검토할 여지가 없다.”

4. 판결의 영향과 전망

보수적인 일본의 법원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민족차별’을 인정하고 고액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점은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판결은 교토조선제일초급학교 사건 이후에도 일본각지에서 연달아 일어난 헤이트스피치 활동을 일정부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본국회에서는 외국인차별을 금지하는 국내법을 정비하자는 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재일한국인들에게 이 판결이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생겨버린 아이들 마음의 상처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어린 시절,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다니던 통학길에서 “한국인 죽어라”라는 폭언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고, 전철을 기다리다가 “한국인 주제에 먼저 타지마!”라며 누군가 머리를 잡아당겨 넘어진 일도 있었다. 일본사회에서는 여전히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사건이 얼어나고 있고, 그 표출방법도 나의 재학시절과 비교해 볼 때 더욱 악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당한 차별이나 폭행의 경우 행위자가 적어도 ‘개인’이었고 음지에서 행해졌지만, ‘재특회’의 경우 조직을 만들어 당당히 차별활동을 하고 인터넷으로 차별을 조장·확산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극우 아베정권의 대두 아래 ‘안보법안 개악’과 역사왜곡을 통해 일본이 군사국가로 변모를 꾀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차별과 싸울 것이며, 재일동포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응원과 관심을 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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