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은 의료기술적 과실과 설명의무위반이라는 2중판단구조 하에 심리한다. 전통적으로는 의료행위와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와 과실이 있는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동료 의료인 사이에 옹호적 감정 내지 감정거부로 재판이 지연되고 사실관계 확인조차 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에 법원은 의사의 도움 없이 재판을 진행할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설명의무위반으로 인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침해이론을 판례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의료인의 설명의무를 의학적 관점에서 법률적 관점으로 옮겨 다루게 된 결과, 환자는 더 이상 전문감정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박일환 전 대법관은 이러한 발전은 의사들의 침묵의 공모에 대한 투쟁의 한 걸음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철학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처분되지 않는다’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륙법계와 영미법계가 조금은 다르지만 법사학적으로는 1894년 독일제국법원 판결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어린 여아의 발목이 썩어들어 가자 패혈증을 염려한 의사가 보호자 동의 없이 치료목적으로 발목을 절단한 사건에 대하여, 독일제국법원은 상해죄를 인정하였다.

이 판결에서는 설명의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의료에 대한 시각이 의료인중심, 공급자중심에서 환자중심, 소비자중심으로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독일법원은 1941년 처음으로 의사의 위험설명의무를 법적으로 요구하였고, 의술상 과오에 대한 입증곤란으로 심증형성이 충분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설명의무위반책임을 독립적 부수의무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1905년 미네소타법원에서 “환자는 수술에 대한 최종결정자여야 하며, 따라서 환자는 의사가 권유하는 수술에 대하여 충분한 고려를 하고 동의한 경우에만 수술하여야 하고, 만약 의사가 환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이 긴박한 긴급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동의한 범위를 넘어 수술을 하였다면 상해죄가 된다”고 판시하면서 사전동의 이론을 적용하였다. 미국은 초기 설명의무위반행위를 고의범으로 처벌하다가, 1957년 의료과실은 과실범으로 처리하면서, 동의 없는 치료행위만을 고의이론으로 처리하는 것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반론을 접하면서 과실이론으로 바꾸어 적용하였다.

설명의무이론은 의사가 설명해주면 충분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설명의무를 지운 이유는 의료행위로 인한 위험성을 피해자인 환자가 이해하고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하는데 있다. 의사가 아무리 설명해도 환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의사는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야 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대법원은 “설명의무는 침습적인 의료행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의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상의 조치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 측에 설명의무를 이행한 데 대한 입증책임이 있다”고 하여 설명의무가 의사의 재량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

다만 독일, 미국, 일본과는 달리 대법원은 설명의무위반행위 그 자체에 대하여는 위자료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최근 미용성형수술이나 조기위암오진사건 등 일부에 대하여 재산적 손해배상까지 그 범위를 넓히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법원은 설명의무를 독립적 의무로 인정하는 사례부터 치료행위에 부수하는 주의의무의 일종으로 보는 사례 등 다양한 시각을 취하고 있다. 이는 설명의무이론이 판례이론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형법 제110조에 ‘의학적 원칙에 따른 경우라 하더라도 타인을 그 동의 없이 진료한 자는 6월 이하의 자유형 또는 360일 이하의 일수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설명의무위반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입법례에서 볼 수 있듯환자의 동의없는 의료행위는 형법상 상해죄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승낙이론에 의해 위법성을 조각하고 있다는 전통이론에 따른다면 우리법원의 판례도 설명의무위반 시 형사상 상해죄로, 민사상 재산적 손해와 위자료를 포함한 모든 손해배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꾸기 위한 의무는 당사자주의를 취하고 있는 현 제도 하에서 변호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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