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프랑스 파리의 샤틀레 극장. 소프라노 조수미는 독창회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관객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만류했다. 조수미는 슬픔을 참으며 무대에 올랐다.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앙코르가 연호되었다. 무대로 돌아와 비로소 청중들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했다. 낮은 목소리로 “하늘로 가신 아버지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라고 말했다. 노래를 시작했다. 애절한 울림에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노래를 끝낸 후, 결국 손수건에 눈물을 찍어냈다.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일어섰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박수로 위로했다. 그 날 조수미가 아버지를 위해 부른 이 노래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였다.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안녕하세요? 마리아’란 뜻의 라틴어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아베 마리아’라고 인사를 하면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될 것을 알려준다. 그 후 곡을 붙여 성모송(聖母頌)을 만들어 마리아를 찬미했다. 오늘날 가장 널리 불리는 곡은 1825년에 작곡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다. 하지만 실제 이 곡의 제목은 ‘아베 마리아’가 아니었다.

이 곡의 가사는 영국의 시인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여인’에서 가져왔다. 슈베르트는 그 중 6번째 시 ‘엘렌의 노래’에 주목했다. 엘렌은 아버지와 함께 추방된 후, 호숫가 바위 위 성모상에 이마를 대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베 마리아,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아버지에게 평화로운 잠을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기도 내용이 ‘엘렌의 노래’ 중에서 ‘3번째’ 노래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아베 마리아’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원래의 제목인 ‘엘렌의 3번째 노래’보다도 더 친숙한 ‘아베 마리아’로 부르게 되었다.

조수미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아베 마리아, 아버지를 편안하게 잠들게 해 주소서’라는 가사와 선율이 천국으로 올라간 아버지에게 따라가 닿기를 원했을 것이다. 조수미의 파리 공연은 이후 ‘아버지를 위하여(For my Father)’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2012년 서울 중구의 명동성당. 낮 12시 미사가 열렸다. 1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자리에 앉았다. 한 성악가가 조용하게 발걸음을 옮겨 무대에 올랐다. 성당의 벽면을 타고 흐르며 ‘아∼베 마리∼아’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였다. 이 곡은 모든 장식과 미사여구를 모두 걷어낸 아베 마리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아베 마리아’만 계속 부르기 때문이다. 다른 가사가 전혀 없다. 하기야 아베 마리아를 간절하게 부르는 것 말고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숭고하고 지극한 것은 경계를 넘어 오직 한 곳에 이르는 것이다.

신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오직 한곳을 쳐다보았다. 무대 위에 선 성악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머리가 파르라니 깎여 있었다. 그 성악가는 비구니 정율 스님이었다.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가 부른 직후였다. 그녀가 1995년 발표한 데뷔 앨범에 이 노래를 카치니의 곡으로 표기하였다. 카치니는 16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곡은 카치니의 작품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무명 작곡가인 블라디미르 바빌로프에 의해 작곡되어 1970년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무명의 곡이라고 무시당할 것을 우려하여 작곡자를 16세기 작가 미상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이 곡은 오늘날 대표적인 성모송이 되었다. 바빌로프의 곡이지만 아직도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불리고 있다.

아베 마리아는 성모에 대한 찬미로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 대한 찬양이다. 모성과 신성은 통한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했다.

혜민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종교는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소중하듯, 친구 엄마도 내 친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2015년 12월, 저 멀리 명동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의 손에 촛불이 하나씩 들려 있다. 그리고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종교의 벽을 넘어 공존과 화해의 간절함을 담은 목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위하여(For My Mother)’, 이 노래, ‘아베 마리아’를 다 함께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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