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청소년인권경진대회 문제

주제 : 외국인청소년의 인권

<문 제>

(가)에 적시된 법령과 조약을 전제하고, 제시문 (나) (다)의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례 (라)의 나한민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사 례>

(가) 관련 법령
<대한민국 헌법>
제2조, 제6조 제11조, 제31조 등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 대한민국 정부 : 1991년 비준
제1조, 제2조, 제9조, 제28조, 제29조 등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46조제1항제8호, 제51조, 제59조, 제60조, 제61조 등

(나) 외국인 아동이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외국인 아동 본인의 선택은 없다. 부모를 따라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인이 아닌 부모를 만났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부모가 외국인이면 그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하더라도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가 없다. 난민신청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대사관에 출생등록조차 못하여 무국적자가 된다. 불법체류상태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 또한 출입국관리법상으로는 불법체류자이지만 부모를 따라왔을 뿐 그 자신이 불법체류상태를 초래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 동류성에서 정의를 찾고자 하는 것이 인권이 아닌가? 롤즈(Rawls)의 말을 빌려보자면 인간의 지위와 소유는 인간적 자율성을 보존할 수 있고, 그 사회가 인간적 협동체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또 그런 한도에서 합당한 것이지, 그것을 향유할 어떤 본래의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외국인 아동은 그의 부모의 체류자격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인권은 누릴 수 있어야 하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성장단계에 있는 아동이 학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평생 동안 사회적, 경제적, 지적, 심리적인 면에서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게 되며, 개인의 자아성취에 장애가 된다. 따라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성년자녀들도 최소한의 교육권은 보장해야 한다. 이는 인권이며 시혜가 아니다.

(다) 우리나라는 혈통주의에 따라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민이나 이주노동자의 체류에 대하여도 엄격한 요건에 따라 체류허가를 내주고 있다. 어떤 사람을 국민으로 정할 것인가는 입법의 문제이며, 그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의무 또한 입법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도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는 국가가 언제 누구에게 어떠한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라는 법률로서 정해지는 문제일 뿐 이를 인권의 문제로 다룰 수는 없다. 특히 교육·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데, 이들 미등록 외국인들은 납세·병역 의무 등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전혀 이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미등록 외국인에게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만약 미등록외국인까지 보호하는 정책을 허용하게 되면 우리나라에 불법으로 들어와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폭증하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당연히 제공되어야 할 복지혜택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사회질서는 더욱 어지러워져 사회 통합에도 저해가 될 것이다.

(라) 현재 고2(만 17세)인 나한민은 가정형편은 어려우나 성적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학우들과도 사이가 좋다. 나한민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같은 학교 학생들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행여나 그 친구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동네 주민이 그 싸움을 신고하였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 10여명이 모두 경찰로 연행되었다.

경찰에서 나한민이 위 싸움의 목격자로서 조사를 받던 중 나한민이 3살에 ABC 국적의 부모님을 따라 온 ABC국적자이며, 나한민의 부모가 현재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불법체류상태이므로 나한민 역시 불법체류 상태임이 밝혀졌다. 경찰은 이 사실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렸고,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나한민을 강제출국시키기 위하여 외국인보호소에 보호조치한 상태이다. 나한민의 부모는 자신들 역시 강제추방될까 두려워 나한민의 면회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나한민은 아직 미성년자이며 부모가 모두 한국에 있으므로 ABC국으로 강제출국당할 경우 자신을 보호해 줄 부모 없이 혼자서 살게 되며, ABC국은 후진국이고, 복지제도가 열악하여 ABC국에서부터 제대로 된 경제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므로 ABC국의 언어를 잘 하지 못해 ABC국에서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

나한민은 자신은 미성년자이므로 성년자가 될 때까지는 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고, 적어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 까지만이라도 강제출국되지 않고 한국에 거주할 수 있게 해달라며 이의신청을 하였다.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나한민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인권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권이란 헌법 제 37조 제2항에서 말하는 국가가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중 침해할 수 없는 본질적인 내용을 가지는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인권의 경우 그 대상자가 성인의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그 보호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사례 (라)의 미성년자인 나한민이 처한 상황은 자신이 유발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아동인권이 보호받아야 할 상황이라 생각한다. 사례 (라)의 나한민을 대한민국의 ‘국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여 헌법 제31조에 의거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인권의 가치를 무시한 것이다. 헌법이 인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는 모순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제시문 (다)에서는 입법의 문제를 들어 나한민은 국민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복지혜택을 제공 할 수 없다고 한다. 입법은 자원배분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고 이는 인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권의 가치를 철저히 도외시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 헌법은 인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입법과 인권이 별개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자원배분의 관점으로 생각해볼 때에도 나한민은 현재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무국적자이기는 하나 빠른 시일 내에 대한민국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권과 같은 복지혜택의 배분이 무국적자 아동에게 간다고 하더라도 자원배분의 기준에서는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무국적자 아동이 기본적인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성장할 경우 사회의 위험요소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교정을 위해 더 많은 사회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20여만 명의 불법체류자가 있고 그들의 자녀인 무국적자 아동은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가 설명하는 것은 이들을 이미 법률로써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법체류자 20여만 명을 모두 법의 그물망으로 가려내어 처벌하고 추방하는 일은 시간과 비용 면에 있어 불가능하다고 본다. 게다가 불법체류자 및 무국적자가 3D 업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으며 이들을 대체할 자국민계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기본적인 복지혜택을 누리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다 체계적으로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법률로 규율함으로써 자원배분의 기준을 더욱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남은 과제이다. 이미 미국은 이중 언어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체류 외국인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의 국가도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위한 정책을 입법, 추진하여 이들을 새로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볼 때 제시문 (다)의 관점은 적절치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나한민에 대한 절차과정을 거치고 있다. 반면에 나한민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정의하는 아동에 해당하므로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헌법 제 6조에 의하면 조약과 국제법규의 효력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출입국관리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같은 법률상의 지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한민의 ABC국으로의 추방이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9조에 근거하여 정당한지의 여부가 문제가 된다. 나한민은 3세부터 대한민국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여 ABC국의 언어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ABC국은 후진국으로 아동의 안전한 교육과 생활을 장담할 수 없다. 추방당해 ABC국으로 가게 될 경우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부모로부터 떨어지기 때문에 나한민은 성인보호자의 보호아래 생활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유엔아동권리협약 9조에 따른 ‘부모와의 분리가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나한민은 출입국관리법 61조에 의하여 ‘대한민국에 체류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아 체류를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일란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린 국민들이 정작 자국의 아일란을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위해 불법체류자 부모와 그 자녀인 무국적 아동이 한국에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5년 이상 거주하면서 범법행위가 없었고, 불법체류기간동안 내지 않은 소득세 등을 한꺼번에 내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주는 내용으로 이민법을 개정했다. 한국 국적을 주지는 않더라도, 이런 경우를 참고하여 우리나라도 합법 체류자로 신분을 바꿔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그 예로 선별적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 모두에게 임시체류자격을 주는 입법 등이 있다. 부모가 합법 체류지위를 얻게 되면 자국 대사관에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있어 자녀도 국적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합법체류자가 되면 불법체류 중에는 내지 않던 소득세 등을 납부하게 되어 국가 세입에 보탬이 되는 효과 또한 생긴다. 한국의 아일란이 한국의 알토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과 정의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는 한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법과 정의가 칼처럼 엄하고 저울처럼 공평하며 눈을 가림으로써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판결을 내리겠다는 재판관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신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표현된다. 판단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의윤리와 같이 엄정해야하지만 적용은 배려윤리의 정신인 따뜻한 마음으로 내리겠다는 뜻이 아닐까? ‘톨레랑스’란 프랑스어로 관용의 정신, 즉 너그럽게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주체가 자신이 나쁘다거나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다른 주체에 대하여 압박 등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법적 판단과 적용에서 공명정대함만을 우선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신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법의 근원적 존재이유인 인간의 기본적 권리, 인권의 보호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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