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인 큰 충격을 겪은 후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 지킬과 하이드처럼 한 개인이 여러 인격을 소유하는 주인공 등을 다룬 내용이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질환 자체가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의 의식, 기억, 정체성, 감정, 행동 등에서 정상적 통합이 와해되거나 부분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갖는 질환을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라고 한다. 해리성 장애에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다중인격장애),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둔주 등이 있다.

해리성 장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보통 성장 시기에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과거력을 가지며 신체적, 성적 학대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충격적인 사건 이외에 질환 발생에 대한 개인적인 취약성, 환경적인 요소, 외부 지지 체계의 부재 등도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는 흔히 다중인격장애라고 불리는 것을 말하며, 영화 등의 소재로는 흔하나 실제로는 드물다. 한 사람 안에 서로 다른 둘 또는 그 이상의 각기 구별되는 정체성이나 인격 상태가 존재한다.

각 정체성은 환경 및 자신을 지각하고 관계하고 생각하는,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독특한 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적어도 둘 이상의 정체성이나 인격 상태가 반복적으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한다. 태도, 외모, 옷차림, 기호 음식 등이 갑자기 바뀌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일상적인 망각으로 설명하기에는 광범위한, 중요한 개인적 정보를 회상하지 못하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투쟁하고 서로 비난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장애를 악마에 사로잡힌 빙의 상태로 보기도 하였다. 19세기에 샤르코가 해리현상, 즉 정체성이 분열되는 상태로 이해하였고, 프로이드는 정신역동적 설명으로 해석하였다.

해리성 기억상실(dissociative amnesia)은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말하며, 해리성 장애 중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갑작스럽게 나타나지만 회복 또한 갑작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흔히 머리를 부딪친 후 갑자기 기억이 돌아오는 장면 등으로 나타난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단순한 건망증과는 구별되며, 뇌손상으로 인한 장애도 아니다. 국소적 기억상실은 특정 시간대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선택적 기억상실은 특정 시간대의 사건 중 전부가 아닌 일부 내용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갑자기 가정이나 직장을 떠나 예정에 없는 여행을 하며, 개인적인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나고, 혹은 새로운 이름, 주소, 직장을 갖는 등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는 주인공의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흔히 보게 되는데 이러한 장애를 해리성 둔주(dissociative fugue)라고 한다. 해리성 둔주는 해리성 기억상실의 한 종류로서 전반적 기억상실이 나타나는 것이며, 이 또한 실제로는 드물다. 주거지에서 이탈하는 등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과거의 가족이나 친구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어떠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후 해리성 둔주에 걸려 갑자기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며 방황을 하다 실종,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 해리성 둔주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 년 간 나타날 수 있다. 해리성 둔주에 걸려도 과거에 습득한 일반적 지식과 피아노 연주를 한다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고, 새로운 것을 습득 기억하는 능력도 유지된다.

이러한 해리성 장애는 억압과 부정 등의 심리적 기전을 사용하여 견디기 어려운 기억을 의식에서 제거하는 행위이며, 학대나 폭력, 전쟁과 재난처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인간은 방어기제로 해리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전시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발병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유아기에 신체적, 성적 학대를 받으면 해리성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인격장애가 흔히 동반되며, 우울증, 불안장애, 약물남용 등과도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해리성 장애 환자의 4명 중 3명 이상이 여성이며, 남성에게 발병할 경우에는 범죄와 폭력 행동이 많이 나타난다.

간혹 영화의 소재로서 반전을 노리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의 범죄를 방어하기 위해서 일부러 해리성 장애 환자로 위장하기도 한다. 꾀병, 거짓 등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와는 구별해야 하며, 엄밀한 정신 감정을 통해 감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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