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법무부는 돌연 사시폐지 유예 발표를 하였다. 그와 함께 사시존치냐, 폐지냐의 논의는 법조계를 넘어 전국민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2007년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 대안도 없이 로스쿨이 도입되었고 사시폐지가 결정되었다. 로스쿨 시행 7년이 넘었건만 사시 존폐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오히려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나는 수도권 변두리에서 자랐고, 현재도 그렇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고생만 하셨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꽃 도매장사를 하면서 1남 2녀를 키우셨다.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IMF 금융위기 때 가게의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보증금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쫓겨나셨던 것 같다. 불행히도 그 때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가세는 기울었고, 스무살 무렵 아버지가 겨우 마련한 집마저 팔 수밖에 없었다. 집을 판돈으로 아버지는 다시 꽃가게를 운영하였고, 우리가족은 월세 집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대학교에 진학했다. 당장 등록금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1년 동안은 빚을 내서 등록금을 마련하여 주셨고, 그것도 힘에 부치자 나는 줄곧 학자금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과외 알바는 시작되었다. 시간을 가장 적게 쓰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기에 고시생으로서 최적의 일자리였다. 알바는 사법시험 2차를 앞둔 3개월만 제외하면 내 대학 생활에 일부였다. 지원이 없기에 공부를 하려면 내가 벌어야 했고, 또 내 인생이기에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하면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났고, 1시간 반을 대중교통을 타고 학교에 갔다. 통학시간 동안 강의 테이프를 들어 시간을 아꼈고,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밥값을 아꼈다. 학교의 도움을 받아,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법공부가 재밌었고, 법조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로 번 용돈이 전부였다. 그걸로 책을 사고, 밥을 먹었다. 다행히도 학교 고시반에서 강의 테이프를 무료로 빌려 주었고, 책도 빌릴 수 있었다.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였고, 진도별 모의고사 비용만 추가로 들었던 것 같다.

구구절절한 위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연수원 동기들 사이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공부하였다는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특히 고시계에 게재되는 합격기 서두는 늘 내 이야기와 같았다. 오히려 집안의 도움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절박하게 만들었고, 다시 돌아보면 그만큼 절박하고 최선을 다 한 시간이 있었나 싶다. 이 또한 나의 사다리였던 사법시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것도 내가 시험을 봤던 2009년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내가 6년만 늦게 태어나 사시가 폐지 수순에 이르렀다면 나는 법조인의 꿈을 접었을 것이다.

난 대학교 때 장학금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혜택이 있다지만 기초수급자는 아닌지라 해당 조건에는 맞지 않았다. 로스쿨 진학 시 장학혜택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에게까지 주어질지 미지수다.

학부 역시 학자금대출로 버텼던 내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 학자금 대출을 또 받는다? 학자금 대출을 갚았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대출 받아서 로스쿨에 진학한다는 사람들을 만류하고 싶다.

법조인은 더 이상 개천의 용이 아니며, 그냥 하나의 직업군이다. 그렇다면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노력하면 될 수 있어야 하고 진입 장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부의 양극화가 심화된 지 오래고, 계층 간의 이동이 쉽지 않다. 양극화를 완화하고 계층 간의 이동을 쉽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지, 만들어진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아니 된다.

법무부는 발표 당시 법조인 선발과 관련하여 3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예비시험을 통해 로스쿨을 통하지 않고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방안, 로스쿨 개선을 통해 사시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 사시를 존치시키고 사법연수원을 대신할 연수기관을 설립하는 방안 등이다.

예비시험 논의가 유력하나 일찍이 일본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예비시험은 반대하는 시각이 많고, 다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희망의 사다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예비시험보다 효율적인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도입될 예비시험과 사법시험이 크게 다를까 라는 의문도 든다.

나는 로스쿨 문제를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로스쿨 도입 당시 고비용, 진입장벽 문제를 보완하기 위하여 예비시험과 같은 법조인 선발과정에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기로 논의됐다. 나 같은 사람들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돈 없어도 노력하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사다리였던 사법시험이 존치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