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기관으로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2006년부터 기관장을 공개 채용해 기관장과 임기 및 경영실적 계약을 맺고 기관장에게 일반 행정기관보다 폭넓은 조직·인사·예산상의 자율성을 주는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모 절차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아쉽게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윤수 관장 이래 제대로 임기를 마친 관장이 없다. 2003년 처음 임명된 민중미술의 태두였던 김윤수 전 관장은 2008년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 작품구입과 관련된 법률 및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임되었고, 2011년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내고 탱크주의로 유명한 CEO출신의 배순훈 관장 역시 임기 3달을 앞두고 돌연 사임을 했다. 2014년 정형민 관장은 감사원의 감사결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채용과 관련해 지인 2명을 부정 채용하였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되었다.

이후 14개월간 공석으로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새로 선임된 바르토메우 마리(Bartome Mari) 전 바르셀로나(MACBA) 현대미술관장의 선임 과정 역시 큰 진통을 거쳐 왔고, 마리의 임기가 시작하기도 전 논란이 커져 그의 국제적인 현대미술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에 대해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선정은 2015년 6월 최종 신임관장 후보가 모두 부적격하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1차 결과발표로 최종 후보자였던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이 문화체육관광부 결정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반발 기자회견까지 있던 끝에 2015년 8월 외국인도 포함한 후보자 재공모를 실시하여 겨우 마리 관장으로 선정됐다. 선정 발표 직후 노순택, 박찬경 등 국내 미술인 82명은 마리 관장이 바로셀로나 현대미술관장 재직시 스페인 군주제를 풍자한 작품의 전시를 막고, 당시 큐레이터 두명을 해고하면서 검열논란을 빚어 사퇴한 것을 들어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검열과 통제에 반대하는 신임 관장의 공개적 윤리선언을 요구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내고 신임 마리 관장에게 검열반대 윤리서명을 요청하였다.

이에 오히려 엔리코 룽기 룩셈브루크 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해외 미술계에서는 국내 반대 여론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20년 넘는 기간 동안 마리가 보여준 혁신적이고 훌륭한 전시기획전문가로서의 성과를 치하하고, 마리가 문화적 체계를 운영하고 보다 큰 예술적 소통을 도모하는 전시회를 구성하는 일을 계속하기를 격려한다’는 서명운동을 시작하여 마치 국내 미술계와 해외 미술계가 대립하는 모양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러한 국립현대미술관장들의 연이은 낙마는 단순한 불운에 불과한 것일까?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제대로 임기를 마친 관장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미술계의 대단한 불운이라고 생각되며 이러한 원인-무능, 비전문성, 정실주의 및 연고주의-을 돌아봄으로 우리가 현대미술관장의 낙마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지도 생각해본다.

과거 김윤수 관장의 경우 취임직후 예산까지 확보되어 있던 주차장 사업을 취소시킨다든지 전임 오광수 관장시절 덕수궁 석조전을 덕수관 분관으로 확대하기로 한 부처간 합의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2000년 85만명이던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을 2007년 43만명으로 급감시킨 무능함으로 비판받던 중 2008년 11월 작품 구입 및 보존상 법규 및 규정위반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하지만 2010년 10월 대법원은 김윤수 전 관장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해지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김관장에 대한 채용계약해지가 무효이며, 계약해지 후 계약기간 만료시까지 급여를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김 관장의 후임인 배순훈 전 관장은 미술계 인사가 아니고, CEO와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전력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의 개인적 인연도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국군 기무사령부 부지에 서울관을 건립하고,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를 외부 전시기획자에게 의뢰하는 제도를 시행한 공적이 있으나, 2011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의원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은 이후 사의를 표명하였고, 당시 추진하던 국립현대미술관의 특수법인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2012년 1월 임명된 서울대 교수 출신의 정형민 전 관장은 2013년 11일 서울관 개관기념전인 ‘자이트 가이스트-시대정신’전에 참여한 작가 39명 중 32명이 서울대 출신으로 이루어져 예술의 다양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관치행정이라는 이유로 한국미술협회 규탄대회, 미술평론가협회 등의 사퇴요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정 관장의 임기를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인 2014년 10월 16일 정 관장이 작품선정 및 직원선발에서 너무 서울대만 고집한다는 지적이 커져 감사원의 감사가 개시됐고 직원 2명의 부정채용이 확인돼 감사원의 수사의뢰까지 받았다.

이상의 국립현대미술관장 수난사를 보면서,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더라도 조직을 둘러싼 환경과 문화적응이 쉽지 않을 것임이 예측되지만, 정치적 정실주의를 넘어선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이끌어 줄 마리의 활약을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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