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마르지 않았을 까까머리에 벌써 담배와 술을 배운 그에게 장르를 가리지 않은 남독(濫讀)과 잡필(雜筆)은 성장기의 ‘질풍노도’를 헤치고 나갈 비상구였다. 마침 실존사상과 반전, 히피(hippie) 그리고 여성해방운동 등 주류를 거스르는 반문화(反文化)의 흐름이 한국에까지 넘나들었고, 군사정권의 억압체제 아래 저항과 분노의 목소리는 내부로 잦아들고만 있었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 검사나 판사의 직은 도서관에 틀어박힌 이기적 ‘범생’들이나 택하는 길이라 생각되어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희망하던 인문학자나 저널리스트로의 진로가 타의에 의해 원치 않던 상과대학 응시로 바뀌면서 결국 1차 중도포기에 이르고, 2차로 ‘잠정적으로’ 적을 두게 된 것이 법학과였다.

그렇지만 그에게 법학이란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일상화된 학생시위의 와중에 지인의 우연한 이끌림으로 연극에서 자신의 길을 더듬게 된다.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과 남산 드라마센터는 그의 열정과 집착의 대상으로 이내 화하였다. 그가 영·미문화원을 다니고 관련 서적을 밤새 뒤져가며 힘들게 완성하였던 ‘리어왕 연출(演出)에 있어서 철학적 기초’란 논문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천직(天職)의 부름은 도둑처럼 어느 결에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시 법대 학장은 후에 법무, 문교장관을 역임한 황산덕(黃山德) 박사였다. 국내 법학박사 1호인 그분은 단순한 학자라기 보다는 이미 작가 정비석과 사이에 ‘자유부인’ 논쟁을 일으키고, ‘자화상’이란 저서를 통해서는 군정 반대의 논설로 조사를 받으면서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관상을 담대히 남기는 등 당대에 이름 높던 논객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분이 그의 선친과 서북 동향에 같은 경성제대 출신인 연고로 법학 공부를 설복받게 되었고, 호기심으로 강의를 듣게 되면서 황 박사의 명저 ‘법철학강의’는 그에게 법의식(Rechtsbewußtsein)을 심어준 기본 서적이 되었다. 이제껏 막연히 닥치는 대로 읽어왔던 철학이 현실적 규범에 밀착된 구체화를 띠고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 같은 무렵, 가깝게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이 형사법제의 권위자였던 부친 서일교(徐壹敎) 당시 총무처장관에게 말을 하여 소장한 독일 원서 2권을 그에게 빌려주면서 법학에 대한 그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예섹(Jescheck)과 마우라흐(Maurach)의 두툼한 형법총론을 조심스레 펼쳐 들어가면서 개념의 생소함과 문장구성의 난해함은 그가 읽었던 헤쎄(Hesse)나 만(Mann)류의 소설이나 시집과는 전혀 달랐기에 악을 쓰면서도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형법적 평가의 출발점으로 ‘행위(Handlung)’에 관한 논의에 이르게 되자 이제껏 그가 냉소적으로 품어왔던 법학관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당시 서울의 유일한 독일서점 ‘소피아’ 또는 인편을 통해 바우만(Baumann), 메츠거-블라이(Mezger-Blei), 솅케-슈뢰더(Sch쉗ke-Schr쉊er), 벨첼(Welzel) 등의 저서를 출혈 구입해서 덤벼들었다.

이 무렵 별도로 선물받은 서일교박사의 역저 ‘조선왕조형사제도의 연구’는 과거 우리의 형사실정법이 어떠한 역사적 변용을 거쳤었는지 흥미와 자극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여도 그에게 있어서 법학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도전과 자기충족의 대상이었지 제도적 편입을 위한 방편은 아니었다. 칸트, 톨스토이, 프로이트를 넘나드는 현란한 문체와 독특한 이론 전개에 한동안 매료되었던 유기천(劉基天) 박사의 형법 저서에 언급되었던 히펠(Hippel)의 원전을 찾고자 1959년도 마이젠하임이란 소도시에서 출간된 논문집 ‘기능적이고 도덕적인 법사고(法思考)’를 고생끝에 구했음에도 그 출처가 확인되지 않아 허탈해하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뚜렷할 정도의 지적 유희도 있었으니까….

그 후 사병으로 자원입대해 전방 특수부대에서 별별 인생들과 얽혀 온갖 고투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제껏 항아리에 갇힌 듯한 자신의 옹졸함과 오만을 점차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라가 공인하는 자격으로 사회참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육법전서에 손을 대었고 제도권의 문을 두드렸다.

그 이래 본인이 기도했던 이상으로 국록을 오래 받아 먹었으며, 자유직업의 길로 나선지도 벌써 여러 해 흘러간다.

최근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로 철거되기에 이르면서 오랫동안 서고 깊숙이 숨어있던 책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있다. 그리고는 애초 그의 행로를 이끌었던 수많은 하드 카버 책들 속의 지질이 누렇게 변해감을 발견한다. 이제는 돋보기로도 잘 보이지 않는 깨알같이 작은 활자들과 군데군데 쳐진 밑줄, 그리고 연필 메모를 보면서 과연 그의 ‘법학’ 입문이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생래의 숙명대로 따랐던 귀결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상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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