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조절장애는 욱하는 화를 참지 못하여 후회할 지경에 이르고 마는 경우를 총칭하곤 한다. 이런 용어의 저변에는 화(火)는 나쁜 것이니 참아야 한다는 의미가 놓여있다. 오죽하면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화라는 감정 자체는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기쁨이나 슬픔처럼 우리 삶에 필요한 감정일 뿐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감정으로 알려진 분노나 공포, 슬픔 등도 다 나름대로의 적응적 가치가 있다. 일테면 좌절감이나 초조함 같은 얕은 화는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하다는 신호역할을 하며, 분노와 같은 큰 화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해서 즉시 행동을 취할 수 있게끔 사람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화의 적응적 가치를 무시하고 무조건 참기만 할 때 화병(hwa-byung)이 되기도 하고 병적으로 폭발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스런 감정인 화를 제대로 알아채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선생님(부모, 직장상사…)이 심하게 소리 지르며 꾸지람하고 있을 때 학생(자녀, 부하직원…)의 다음 행동 중에서 무엇이 화인가?

1. “왜 나만 가지고?” 하면서 큰소리로 대든다.
2. 꾹 참고 있다가 나중에 만만한 대상에게 지분거린다.
3. 내가 잘못해서 야단맞은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4. 반성하는 척하다가 나중에 흉을 본다.

언뜻 봐서는 대드는 1의 경우만 화를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경우가 다 화가 난 상황이다.

화를 전위(displacement)해서 속죄양을 만드는 2의 경우나, 아예 화 자체를 억압(repression)하는 3의 경우, 간접적으로 화를 푸는 수동공격적(passive·aggressive) 행동을 하는 4의 경우나 다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화는 압력밥솥의 증기와 같다. 압력밥솥은 배출구의 모양이 하나이지만 마음 속 화는 위의 예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화를 억압할 경우에는 본인도 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억압해서 정말 화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생긴 증기는 배출되어야 하는 것처럼 일단 발생한 화는 어떤 경로로든 간에 밖으로 배출되어야만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압력밥솥은 증기가 배출구 방향으로만 배출되지만 마음 속 화는 두 방향으로 표현된다. 자기를 향해서 화를 내거나 남을 향해서 화를 내거나!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고 쌓여서 압력이 강해진 상태의 화가 나에게로 향하게 되면 우울이 되고 남에게 향하게 되면 폭력이 된다. 우울과 폭력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화가 쌓이게 되면 나에게 향한 화는 자살이 되고 남에게로 향한 화는 범죄가 된다. 증기가 빠질 구멍이 전혀 없는 압력밥솥이 결국에는 폭발하게 되듯 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밥솥의 압력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증기배출구가 막히지 않도록 관리하듯이 건강하게 화를 내고 생산적으로 화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상담이다. 상담(相談)이라는 단어의 한자의미를 실천하는 것으로, 전문 교육을 받은 상담자가 아니라도 일반인들도 조금만 노력을 하면 상담을 할 수 있다.

먼저 담(談) 글자를 보면 담(談)은 화(火)가 난 것을 말(言)로 푸는 것을 말한다. 화도 그냥 화가 아니고 활활 타는 염(炎)이다. 말로 화를 푸는 일을 독백하듯이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담(談)앞에 상(相)이 놓여 지면 더 근사해진다. 상(相)은 나무(木)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눈(目)이다.

누군가 따스한 눈길로 나무를 지켜보면 나무는 잘 자랄 것이고 나무가 잘 자라면 눈은 더 많이 지켜볼 것이다. 결국, 상담이라는 것은 말로 화를 푸는 것을 그윽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것이다. 작은 불을 꺼줌으로서 홧김에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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