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demo)는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 tion)을 줄인 말로, 반대·항의의 의사를 집단적으로 가두행진을 통해 나타내는 집단행동을 말한다.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도로나 광장에서 행진하는데, 시위대는 이를 진압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다. 돌과 최루탄, 화염병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찰의 차벽이 데모의 확산을 막고 물대포가 사람들을 해산시키는데 쓰인다.

필자가 법과대학에서 처음으로 헌법학 강의를 들었을 때, 중간고사에 꼭 나왔던 문제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논하라”는 것이었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형식논리를 악용하는 민주주의의 적에게는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는 이론인데, 민주주의는 모든 다양성을 허용하는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특정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세계관에 입각하여 민주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민주주의의 적을 물리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독재정권에 항쟁하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그 이론적 배경으로서 방어적 민주주의는 유용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우선 중요하게 가르쳐야 했던 헌법이론이 방어적 민주주의였다는 것은 당시 위정자들의 생각을 엿보게 한다.

방어적 민주주의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기본권을 실효시키거나, 정당을 해산시키는 조치의 이론적 배경이다. 2014년 연말 우리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의 적이기에 그와 같은 정당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방어적 민주주의가 작동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데모’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은 누구든지 평화적인 집회나 시위를 방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또, 헌법은 집회나 시위의 자유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서 제한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작금에 대통령은 복면을 쓴 시위대를 IS에 비견하면서 불법집회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데모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일을 들어 시위대를 국제적 테러리스트에 비교한 것은 과하다고 지적할 수 있겠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는데도, ‘복면’을 너무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었다.

집회를 금지하거나, 이를 해산시키는 것은 필수적으로 특정한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는 금지를 수반하게 된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불온하다고 판단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어떤 언론에서도 시위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관이 충돌하였던 그 ‘방식’이 화제가 될 뿐이다. 폭력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불호령만이 들린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핵심요소로 한다. 어떤 진보 인사는 TV 토론에서 “사회의 건강은 반대 사상을 멸균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망한 이유는 다양성을 말살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한 보수 논객은 “선진국은 다양성을 긍정하지만 그로 인해 사회 공동체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도록 방치하지 않으며,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북한’이라는 위협요소가 있다”고 하면서 반체제 반정부의 폭력시위가 다양성으로 위장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위와 같은 의견이 대립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회가 민주주의의 적에 대하여 자연스레 이를 도태시킬 수 있는 자신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필자는 우리나라 사회의 이념 건전성은 허약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일베’를 금지하지 않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일베’를 지지하지 않는다. 국민은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고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일부의 사람들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개최된 시위에서 폭력이 오고가게 된 것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원인인지, 반대로 시위대가 먼저 허용되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여서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식의 순환논리일 뿐이다. 그러나, 폭력이 발생할 심각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그 집회를 선제적으로 모두 차단하여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듣기 싫은 소리를 아예 하지 못하게 막기 위하여 폭력적인 방법에 의하여 의사를 표시하니까 들을 수 없다는 것으로도 보인다.

말싸움을 하면서 “너 몇 살인데 이렇게 버릇없이 말하느냐?”라는 대응이 떠오르기도 한다. 폭력시위로 변질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집회를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데모대가 하는 이야기는 건강한 국민들의 판단으로 시시비비가 자연히 가려질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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