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 국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2월 9일 정기국회가 끝나도 임시회가 몇 번 열리겠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마음은 공천과 지역구에 가 있을 것이다.

이번 19대 국회는 볼썽사나운 여야 간 몸싸움과 폭력행위가 사라진,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국회였다. 그렇지만 지금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박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국민이 여야 간의 폭력적인 정치싸움과 부패에 염증을 느꼈다면 요즘엔 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바로 무력감이다. 요즘 국회 때문에‘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무력감을 행정부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도 느끼고 있다.

이런 무력감은 특히 일본형 저성장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앞으로 다가올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가 쏟아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총매출액이 1.2% 감소했고, 특히, 제조업 매출은 마이너스 3.8%를 기록했다. 그동안 우리의 성장동력이었던 수출이 가파르게 감소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는 과반여당이 처리하고자 하는 각종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과 FTA 동의안 등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여당은 법안통과를 위해 야당에 반대급부를 주어야 한다. 국회에서의 모든 안건은 치열한 정책토론과 설득 대신 여야 지도부 간 물밑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식물국회’현상의 상당부분은 지난 2012년 5월 18대 국회 말에 이루어진‘국회선진화법’이란 이름의 국회법 개정에 기인한다. 이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석의 5분의 3 이상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과반수를 넘는 정당이라도 독자적인 입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우리 국회에는 사실상의 가중다수결이 있었다. 바로 13대 국회(1988∼1992)부터 시작된 상임위원장의 여야 배분 관례다.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야당이 위원장을 맡은 위원회에서는 다수여당의 의도대로 법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특히 법안통과의 길목을 장악하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을 제17대 국회(2004~ 2008년)부터 야당이 맡는 관례가 생기면서 과반여당의 입법주도권은 상당부분 상실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까지 더해졌으니 우리 국회에서 헌법상의 운영원칙인 다수결의 원리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5월 우리 국회는 사실상의 가중다수결 국회에서 제도상의 합의제 국회가 된 것이다.

19대 국회가 마무리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국회의 의사결정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회의 현행 가중다수결방식이 헌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각 정당은 ‘국민 여러분!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당의 경제활성화 정책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이젠 그 어떤 정당도 이런 식의 선거운동을 해보아야 소용없다. 현행 가중다수결 체계 하에서는 과반의석은 큰 의미가 없다. 힘들여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얻는다 해도 당초 공약한 대로 일관성 있게 정강정책을 입법화할 수 없다. 정책이 곧 입법이다. 입법을 위해서는 야당과‘정책 주고받기’를 해야 한다. 어떤 정책도 논리적 일관성을 잃고 뒤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년 총선과정에서 정당 사이에 경제회복을 위한 치열한 정책대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각 정당은 일관된 정강정책을 내걸고 치열한 정책대결을 통해 선거에서 이기고, 그 정강정책의 실행과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이런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핵심으로 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현행 합의제 국회로 인해 더 이상 우리 한국 민주주의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고, 전 세계의 모든 민주의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과반다수결 원리는 승자독식이나 다수의 횡포라는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가장 부합한다. 소수는 존중되어야 하나 소수가 다수를 휘두르는 소수의 과잉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9대 국회가 마무리되고 있다. 곧 정국은 총선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내년 총선결과에 대해 가장 알기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정치권의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허심탄회하게 국회 운영시스템을 재검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다.

20대 국회는 가시화되고 있는‘미증유의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국회를 다수결원칙과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원칙이 살아있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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