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이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의 첫 꼭지로 ‘존엄사 사건’을 들었다. 존엄사사건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료판결은 사회적 영향이 크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최근만 하여도 메르스감염병사건, 1회용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양천구 다나의원 C형 집단간염사건을 비롯하여 수혈로 인한 에이즈감염사건, 우유주사(프로포폴) 쇼크사건 등 터지는 사건마다 사회적 이슈를 일으킨다.

1997년 뇌출혈로 자발호흡이 불가능한 남편의 퇴원을 허락한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된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은 우리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응급의료기금을 조성하도록 개정하여 응급환자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고를 막았다. 각 의료기관은 병원윤리위원회를 활성화하여 치료중단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A병원은 지금까지 치료중단을 거부한 환자 모두가 생존하여 퇴원하였다. 과거라면 가족에 의한 치료중단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을 환자들이다. 우리나라 의료윤리를 한 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보라매병원사건의 부작용이 너무 컸다. 죽어가는 환자조차 퇴원을 거부하여 가족들의 반발을 샀다.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은 정작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3~4달 뒤로 밀려 수술을 받기 일쑤였다. 연명치료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환자에게도 인공호흡기를 삽관하였고, 항의하는 가족들에게 “방관하면 살인죄로 처벌받는다”며 거절하였다.

세브란스 ‘김할머니 사건’은 이런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자 기획한 소송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여러 난제가 있었다.

첫째는 ‘소의 이익이 있는가’이다. 외국에서는 죽을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청구가 소의 이익이 없다고 하여 각하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존엄사 사건은 인공연명장치 없이 치료받겠다는 것이어서 소의 이익이 있었다.

다음은 김할머니로부터 대리권을 수여받을 방법이 없었다. 일본존엄사협회에 초청받아 가보니 ‘어떻게 심신상실상태인 김할머니로부터 소송을 수임 받았는지?’를 궁금해 했다.

일본에서도 연간 5만명 이상의 잠재적 소송의뢰자가 있지만 법원에서 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고 하소연하였다. 우리 법원은 아들을 특별대리인으로 지정해 주고, 아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으로 하여 대리권문제를 해결하였다.

셋째는 확인의 소송으로 할지, 이행청구소송으로 할지 고민되었다. 호흡기제거 이행청구가 인용되어도 의사들이 판결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연명장치없이 치료받을 권리 확인소송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넷째는 청구내용에서 호흡기제거만 할지, 영양분, 수분공급중지까지 요구할지가 망설여졌다. 외국의 대부분 판결은 치료중단이 결정되면 모든 치료를 중단시키고 있으나, 우리 정서상 영양분공급까지 중단시키는 것은 굶겨 죽인다는 윤리적 비난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원이 추정적 의사만으로도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어느 나라나 명시적으로 의사표시 하는 경우는 드물고, 특히 우리나라는 배우자나 자식에 의한 대리결정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할머니는 3년 전 남편 사망 시 인공호흡기를 끼지 못하게 하였고, “자신도 이 다음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기계를 달지 말라”고 부탁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법원은 이 점을 받아들여 연명치료거부의 의사를 추정하였다.

존엄사판결에서 법원은 일률적인 법률로 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건마다 판결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엄사입법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노인표를 의식한 나머지 선뜻 입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존엄사사건은 부모에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경으로 여기는 유교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또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고, 무의미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생전 유언장 작성, 호스피스 완화 의료 제도화 등 사회적 제도와 법률을 바꾸는데 기여하였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을 처음 밟은 암스트롱이 “나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라고 한 것처럼 변호사들에게는 의료소송의 시작이 작은 걸음일지 몰라도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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