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1월에 세분의 원로 변호사님들이 돌아가셨다. 11월 7일 유수호 변호사(1931년생, 고등고시 7회)가, 11월 19일에는 조준희 변호사(1938년생, 〃11회)가, 11월 24일에 서정각 변호사(1928년생, 〃1회)가 돌아가셨다. 조, 서 변호사님의 부고는 서울회에서 메일로 보내주어 알고 있었지만, 대구회 소속인 유수호 변호사님의 부고는 사실 나에게 매번 변협의 역사발굴을 독려하는 김이조 변호사님이 전화로 알려주어 알게 되었다. 보니, 이 분이 바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워 유명해진 국회의원 유승민의 아버지였다. 세분이 가신 순서와 나이를 보니 정말로 가실때에는 나이순은 아닌가 보다.

김이조 변호사의 배턴(baton)을 이어받아 변협역사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만큼 짧게나마 세분을 이곳에서 추모한다.

유수호 변호사님은 판사를 하다가 73년 재임용탈락이 돼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재임용 탈락 후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77년에 30대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 1978년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협회장 양준모 시절)을 역임하셨다. 그리고 아들 유승민을 국회의원으로, 그것도 상당히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만들었으니 재임용탈락이 새옹지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준희 변호사님은 짧게 판사를 하시다가 1971년 유신시절 개업을 하여 제1세대 인권변호사로 유명하신 분이다. 민변의 초대회장을 역임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시절인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장, 2005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셨다. 아들이 연수원 39기 조용석 변호사이다.

유수호 변호사님과 같은 경북 출신인데, 한분은 보수, 한분은 진보이면서 관운도, 자식복도 모두 누렸다는 공통점이 재미있다. 문화인을 지향하는 내가 보기에 조 변호사님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 “거기 변호인석에서 경쾌하게 일어나며 / 그의 조목조목은 산 넘고 물 건너 / 꽃소식 한 다발 가져온다”고 묘사된 것이다.

서정각 변호사님은 고등고시 1회 출신이다. 16명의 동기(법률신문에는 14명으로 나온다) 중에 서 변호사님이 돌아가셔서 이제 설동훈 변호사님 한분만 생존하고 계시다. 세월을 비켜갈 사람이 없는 것이다. 부산지검 검사로 출발하여 서울중앙지검장, 광주 고검장을 역임하시고, 90세 가까이 사셨으니 이분도 복 많은 분이다. 김우중 회장과 친하셨는지 1981년 변호사 개업한 후 대우재단 이사와 한국기원 이사장(총재는 김우중)을 역임하였다. 물론 바둑은 수준급이어서 아마 5단이었다. 바둑이 아마 5단이니 노후에 심심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은 나만의 추측을 해본다. 세분의 명복을 빌면서 추모의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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