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조 말. 장소는 충남 공주 계룡면 밀양박씨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주막집. 산골에서 나무를 팔러온 나무꾼이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먹으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다. 마음씨 좋은 박씨 아주머니가 나무꾼에게 다가가 묻는다. “어르신, 땅이 꺼지겠습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나무꾼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는다. 박씨 아주머니는 옆에 앉아서 나무꾼에게 세상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진심으로 나무꾼의 마음을 위로하여 준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도 그 나무꾼이 박씨 아주머니의 주막집에 다시 나타났다. 이 날도 나무꾼은 나무를 팔러 왔다가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수심에 어린 얼굴을 하고 있다. 박씨 아주머니가 술을 한 병 가지고 와서 술을 따라 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어르신, 제가 술 한 병 대접하여 올리겠습니다. 이 술 한 병 마시고 모든 시름과 걱정을 잊으십시오.”

입을 닫고 말을 아끼던 나무꾼이 박씨 아주머니가 하는 위로의 말에 말문을 연다.

“이 놈의 나무꾼신세, 하루 종일 나무를 하여 장에 가서 팔어 봐야 보리쌀 한 되 반이니. 쌀 두가마를 언제 장만한단 말이요.” “쌀 두가마가 왜 필요합니까?” “몇 해 전에 길을 가던 한 노인어른이 날이 저물어 내 집에 하루를 묵게 되었소.” “그 노인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면서 일러준 것이 있다오.”

나무꾼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박씨 아주머니는 흥미가 있어서 술을 다시 한 병을 더 가지고 와서 나무꾼에게 권한다. 나무꾼은 말을 이어간다. “그 노인이 하는 말이 쌀 두 가마를 마련하여 부모님의 묘를 이장하면 부자가 된다고 하였소. 그런데, 어느 세월에 쌀 두가마를 마련하겠소.”

박씨 아주머니가 나무꾼에게 술을 권하면서 이야기한다. “어르신, 제가 쌀 5가마를 마련하여 드리겠으니 그 자리를 저에게 주시지요.” 나무꾼은 쌀 5가마를 주겠다는 말에 술이 확 깼다. 그 후 박씨 아주머니는 쌀 5가마를 나무꾼에게 마련하여 주었고, 박씨 아주머니는 노인이 알려준 자리에 자신의 남편 김현종의 시신을 이장하였다. 김갑순이 12살 때의 일이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다 도둑놈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김갑순. 그의 성공은 아버지 김현종의 묘를 쓰고 난 이후 계속된다.

공주목사의 요강청소를 담당하면서 겨울에 요강을 품안에 안고 있다가 방안에 갖다 놓아 목사의 신임을 얻은 이야기. 투전판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젊은 여인을 구해주고 의남매를 맺었는데 그가 충청감사의 첩이 되어 김갑순을 도와준 이야기. 딸의 혼수비용을 부탁하러 공주목사를 찾아온 친구가 면회를 거절당하자 김갑순이 가지고 있던 돈을 마련하여 주었고 그가 후에 호조판서가 되어 김갑순을 도와준 이야기 등등.

김갑순이 소유한 땅이 공주·논산·대전 등지에 1011만평. 대전 시내에 22만평. 대전부내 전체토지 40%가 김갑순의 소유였다.

공주시 계룡면 산 72. 공주갑부 김갑순의 아버지 김현종의 묘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파묘가 되어 그곳에 다른 사람이 가묘를 써놓았다.

공주 반포 청벽에서 갑사방향으로 가다가 갑사로 가는 마지막 고개에 오르기 전에 왼쪽에 밤나무 숲이 있고 그곳을 보면 묘소가 보인다. 산소로 들어가는 길옆에는 황토로 지은 차와 음식을 파는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삼성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암자를 지나 곧장 올라가면 김갑순의 아버지 김현종이 묻혔던 터가 나온다.

나경을 꺼내 래용(來龍)을 보니 손사(巽巳)로 입수하였다. 좌향(坐向)과 득수득파(得水得波)를 보니 손좌건향(巽坐乾向)에 내파(內波)가 임파(壬波)이나 외파(外波)가 계축(癸丑)이라. 내파는 수법에 맞으나 외파가 수법에 맞지 아니하니 1대 30년 발복하는 자리이다.

묘가 있었던 앞을 보니 길게 내려간 사(砂)가 홀(笏)을 이루고 유방(酉方)에 목성(木星)의 문필봉(文筆峰)이 보인다. 김갑순이 부여·노성·공주 등에서 군수를 역임하고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그 아들이 호피판사라는 별명을 들은 판사벼슬을 한 것은 이의 영향이리라. 간방(艮方)을 보니 금성(金星)의 ‘노적봉(露積峰)’이 보인다. 간(艮)은 천시(天市)라 고대비만(高大肥滿)하면 발부횡재(發富橫財)하니 김갑순이 대부호가 된 것이 이의 영향이리라.

특히 김갑순의 아버지 김현종의 묘는 북향묘로서 북쪽의 바람을 막아주는 산이 술건해임방(戌乾亥壬方)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어머니 밀양박씨의 후덕한 인심과 지혜로 얻은 자리. 그 자손이 발복하여 대부호가 되었으나 1세대가 지나가자 후손들이 그 자리를 계속하여 지키지 못하고 파묘 된 것을 보니 인생의 덧없음을 본다. 덕행이 으뜸이라. 선대의 덕행은 후손들의 재산과 벼슬 그리고 안녕과 영화로 발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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