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하지도 않으며 노련함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경험? 그것 역시 여전히 너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2년차에 맨땅에 헤딩하듯 개업한 나를 믿고 소송을 맡겨주는 의뢰인들이 지금도 너무나 고맙다.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편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에 있어서 단초는 바로 의뢰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실 나는 의뢰인이 처음 상담을 왔을 때부터 직접 상담을 하며 그 이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소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일지언정, 하소연 같은 의뢰인의 푸념을 1시간이 넘게 계속 들어주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소장이나 준비서면을 쓰고 나면 의뢰인에게 그 초안을 보내주고서 다듬고 싶거나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하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의뢰인들이 예전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 변호사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하는 의뢰인들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능동적이며 똑똑하다. 스스로의 사건에 대하여 깊게 관여하고 싶어 한다. 본인의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어떻게 해결되어 가고 있는지 대단히 궁금해 하며, 그러다보니 당사자들 스스로 법정에 나와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원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뢰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런데 의뢰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청년변호사인 나로서도 사건 수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나도 그러한데, 사건의 수가 수십개씩 되는 선배 변호사님들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최소한의 이야기, 소송의 요건사실과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해서 만큼이라도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이 반영된 서면을 쓰셨으면 한다. 그것은 단순히 본인이 대리한 사건의 승패를 떠나서 변호사라는 직업군 전체에 대한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피고대리를 맡은 사건이 있었다. 피고가 원고에게 아파트를 주기로 약정했다고 하면서 약정에 기하여 소유권이전을 해달라는 청구였다. 소장에는 날짜를 특정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날짜가 아닌 추정날짜에 불과했고 약정도 구두로 했기 때문에 서면으로 남겨진 약정서도 그러한 내용을 들었다고 하는 증인도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나의 의뢰인이었던 피고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 날짜에 구두로라도 이러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한 바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와의 관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면서 과연 그런 사이에 아파트를 주겠다는 약속을 대체 왜 하겠냐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것을 토대로 답변서를 작성하였다. 원·피고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시작으로, 약정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원고 당사자본인신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사실상 그때까지 원고는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한 상태였고 최후로 당사자본인신문신청을 했던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당사자신문까지 올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결심을 하고 원고청구기각의 결정을 내렸어야 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계속 길어지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신문이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피고로부터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토대로 탄탄하게 반대신문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이야기를 길게 물어볼 것도 없이 약정여부에 대해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대해 원고는 이와 같이 답하였다. “피고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2013년이 아니라 2011년쯤이었다”라고 말이다. 원고는 소장에서 “2013. 5. 30.경 피고가 원고에게 아파트를 주겠다는 약정을 하였다”고 주장을 하였는데, 대뜸 2013년에 약정한 것이 아니라니…. 나는 재차 “그럼 2013년 5월 30일에는 그런 약정을 한 바가 없다는 것인가요?”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렇다!”라고 확신에 차서 대답을 하였다. 사실 나도 조금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다. 우리가 신청한 상대방 당사자신문도 아니었고 원고 측에서 신청한 본인신문이었는데 너무 말도 안 되게 소장 진술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고 본인과 대리인 사이에 소송을 시작하면서, 아니면 바로 당사자본인신문을 준비하면서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전혀 논의한 바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의뢰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에는 위와 같은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은 채 열심히만 하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단순히 이야기만 들어주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이야기만 들어줄 것 같으면 친구도 할 수 있고 상담사들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가 해야 할 것은 의뢰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고 그것을 적재적소에서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닐까싶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의뢰인들도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을까?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