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몇 가지일까요? 피부색 또는 재산에 따라 분류하거나 어떤 관점에 따라 계층별로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그리고 그 중간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에 대한 좋고 나쁨의 분류는 모든 사람에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본능적인 평가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거나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판을 알려고 하는 것은 사회성의 발로이거나 명예욕의 추구에 해당합니다.

변호사회에서는 매년 법관평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검사평가를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제도로는 좋은 법관과 좋은 검사를 뽑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나쁜 법관과 나쁜 검사를 구별해내는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나쁜 법관과 나쁜 검사를 구별하는 작업으로 변호사들에게 경계령을 내리고 본인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를 달성합니다. 그것이 온당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변호사들의 총의를 반영한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그 평가결과를 듣게 되는 법관과 검사는 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잣대로 평가 받았지만 자신은 그 평가로부터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변호사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합니까? 나는 아직 변호사의 업무수행능력이나 신뢰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력이나 경력을 보면서 그 능력을 짐작하기도 하고 주변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그 사람을 신뢰하기로 결심하기도 합니다. 결국 변호사에 대하여도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변호사에 대하여는 가장 먼저 의뢰인이 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뢰인이 기꺼이 부담하고자 하는 사건 수임료가 그 평가를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사건 종결 후에도 신뢰가 유지되는지에 따라 평가는 엄격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검사가 수사결과로, 판사가 재판결과로 평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좋은 사람들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할까요?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목표달성을 위하여 유유상종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나쁜 사람은 나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사건의 상대방을 만나거나 그 소송대리인을 만날 때 나는 가끔 나쁜 사람들을 만납니다. 상대방 당사자가 나쁘다고 느껴질 경우 십중팔구 그 소송대리인도 나쁘게 느껴집니다. 그 두 사람은 감정일치를 넘어서서 혼연일체가 되어 거짓으로 변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나쁜 사람으로 취급될 때가 있어서 나는 자신과 의뢰인을 다시 돌아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는 사실은 좋은 사람인데 가끔 재판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인식 속에 나쁜 사람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내가 상대방의 적대감을 극복하면서 사건을 이기고 있을 때 종종 일어납니다.

여기서 나는 싸움판에서의 본능적인 적대정책을 들여다 봅니다.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싸움을 하다가 내가 이기기 위하여 상대방은 무조건 옳지 않다고 단정하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싸움의 양상은 공익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검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무죄변론사건을 다루면서 무죄의 증거들이 나타났을 때에도 검사가 스스로 공소를 취소한 적을 본 적이 없고 오히려 그 무죄판결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상소장을 내는 것을 본 일이 있을 뿐입니다.

내게 재미있는 일은 가끔 내 의뢰인도 옳고 상대방도 옳은 일을 발견할 때입니다.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서로 차원이 다르기도 하고 사건의 복잡한 갈등구조를 풀 수 있는 법리가 없을 때도 있는데 이때에는 법관을 내 의뢰인의 관점에 묶어두어야 이기는 싸움이 됩니다.

나는 내가 아는 진실을 재판부에 전달하기 위하여 맹렬한 투사와 같이 치열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관계와 법리를 파악하고 그 입증방법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가”입니다.

나는 이런 치열한 분쟁의 현장에서도 계속적이고 본능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럴 때 나의 의뢰인들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나의 이런 태도를 좋아합니다. 그 결과 나는 한층 더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노력하고 그 대신 경제적 보상의 기회는 조금 멀어지게 됩니다.

결국 좋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과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유용하게 누리려고 하는 조금 덜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은 선택인데 보통 그 선택권은 의뢰인에게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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