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가서 정치학개론을 수강한 일이 있다. 법대를 졸업한 정치학자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마지막 시간에 배정된 수업이라서 저녁 늦게까지 수업이 계속 되었다. 많은 내용을 배웠으나 지금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교수님께서 ‘사기’를 읽으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사기’에 훌륭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겠거니 하면서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 후 세월이 흐른 뒤에 형사재판을 많이 담당했던 판사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판결문을 작성하는데 ‘사기’를 읽고 좋은 구절을 인용한다는 말을 하였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필자에게 친구가 좋은 정보를 준 것이었다. 좋은 판결문을 쓰기 위하여 고전을 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말을 듣고 사기열전을 구하여 읽어 보았다. 형사절차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문구를 발췌하여 논고문을 작성할 때 인용하기도 하였다.

헌법 공부를 하면서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사상에도 약간 접근하였다. 탁월한 통찰력으로 인간사의 이면을 기술한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최초의 인류문명은 자연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자연의 변화에 무기력한 오늘날 인간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본 우주인들의 말에 의하면 유리구슬처럼 생긴 푸른 지구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다고 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언제 끊어질 것인지 모르는 가느다란 선에 매달려 있는 생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영토 문제나 이데올로기 차이로 인하여 다툼을 벌이는 것이 참으로 바보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준에 의할 때 인간이 자연을 어느 정도 정복 또는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후로 인류 발전에는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물이다. 사마천은 특히 인물에 주목하여 인물 중심의 ‘사기’를 편찬하였다. 본기의 ‘기’와 열전의 ‘전’으로부터 기전체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서 불굴의 의지로 성공을 이루어낸 훌륭한 분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위인전에 기술된 사실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 이면에 나타난 인간적 고뇌를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약 100년전 조상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분들에 대한 상당한 양의 평전과 전기를 읽어 보았다. 단순한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현실의 숨결을 느껴 보고, 한 인간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기도 하였다. 역사의 전환점에서 외로운 결정을 해야했던 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어떠한 행동을 하였을까 고민을 해 보기도 하였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라고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말한 바 있다. 관념적인 회색 이론에서 벗어나 큰 산의 청청한 나무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40대 후반에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인간적 치욕을 떠올려 본다. 친구를 변론하다가 한무제로부터 사형 대신 궁형을 당한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한신(韓信)은 동네 사람의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모욕을 견디어야 했다. 사마천은 어떠한 치욕이라도 감수하면서 살아남아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발분(發憤)하여 ‘사기’를 저술함으로써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파울로 코엘료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하였다. 또한 선과 악의 얼굴은 동일한데, 모든 것은 오로지 선과 악이 각 인간 존재의 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의 잣대를 과거에 들이대고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선대 사람들을 꾸짖고 비난하는 태도를 ‘후손들의 오만함’이라 한다. ‘사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허구와 진실, 거짓과 위선이 혼재하고, 천도(天道)가 의심스러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이해득실을 다양하게 계산한 후 대단히 복잡하고 힘든 결정을 내려야했던 한 인간에 불과했다.

모든 일은 이미 그 분수가 정해져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부질없이 바쁘기만 하다(萬事分己定 浮生空自忙).

우리라는 개념에 포섭되기 어려운 이방인은 어느 장소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과 닮은 이방인과 같이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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