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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행정부(行政府)와 행법부(行法府)
김태훈 세계일보 기자  |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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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승인 2015.11.23  1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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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sim1987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재직한 루이스 파월은 대학생 시절 역사에 심취했다. 그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배운 교훈은 ‘군인과 법률가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 주변에 “군인이 될 생각은 없었기에 법조인의 길을 택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법률가라면 몰라도 군인이 세상을 움직인다니,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70년간 큰 전쟁이 없다 보니 군인의 존재감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영국에 대항해 독립군을 이끈 장군이었다. 각각 남북전쟁, 2차 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에 오른 율리시스 그랜트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역시 군인 출신이다. 요즘 같은 평시와 달리 난세에는 확실히 군인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군인과 법률가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명제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80년대에 등장한 ‘육법당(陸法黨)’이란 용어가 이를 보여준다. 육사 출신 장성들과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들이 이 나라 지배층을 형성했다는 뜻이다. 좁게는 5공 시절의 여당인 민정당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정부수립 직후 6·25 전쟁을 겪으며 군대의 몸집이 급격히 불어난 이 나라에서 군부의 부상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 군부는 그 누구도 감히 맞설 수 없는 절대강자였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층이 늘면서 군인들의 힘만으로 나라를 다스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 틈을 비집고 세를 키운 집단이 바로 법조인이다. 전두환정권에선 군인 아래에 놓였던 법조인들이 노태우정부 들어 군인과 거의 대등해지더니 김영삼정부 출범과 더불어 군부를 완전히 밀어내고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렇다면 법률가에 의한 지배는 국민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법조인 전체를 ‘특권층’으로 여겨 경원시하는 이들은 후자라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TK(대구·경북)니 뭐니 하는 극소수 법조인 집단의 지배라면 정말 재앙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상적 가치로 여기는 법치(法治), 즉 법의 지배란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아무래도 법률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법치 달성에 유리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법조인 집단의 특권층화만 막는다면 법률가의 지배는 국민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최근 고위 법관들의 잇단 행정부 요직 기용이 화제가 됐다. 법원장 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다가 옮겨 간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 황찬현 감사원장,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사법부 독립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야를 좀 넓혀 판사가 아닌 법조인의 행정부 진출에 초점을 맞춰 보자. 인권위는 말할 것도 없고 권익위과 감사원 모두 숙련된 법률 전문가의 역량 발휘가 필요한 기관이다.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정치적 편향 논란이 뜨겁다. “사법부가 좌경화했다”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발언도 파문을 일으켰다. 자칫 헌법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큰 두 사안 모두 방통위 소관이다. 그만큼 법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이란 뜻이다.

세계 주요 국가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삼권분립 원리는 결국 법의 지배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에 각각 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부에는 ‘법(法)’자를 쓴 반면 행정부에만 정치를 뜻하는 ‘정(政)’자를 붙인 까닭이 못내 궁금하다.

실은 입법, 사법, 행정 모두 일본인들이 서구어를 번역하며 만든 용어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헌법을 논의할 때 입법, 사법, 그리고 ‘행법’의 삼권분립을 규정했다. 그런데 얼마 뒤 행법을 ‘행정’으로 고쳤다. 여기에는 ‘법률의 집행은 그때그때 사정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일종의 융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행정의 재량권을 인정한 시도는 좋았으나, 그로 인해 삼권 간의 균형이 깨져 행정이 입법·사법보다 훨씬 우위에 선 극단적 국가주의로 치닫고 말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민주국가의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적법절차 준수와 국민의 인권침해 최소화다. 그런 점에서 권익위, 감사원, 방통위, 인권위 같은 정부기관을 법조인이 맡아 운영하는 것은 민주행정의 이상 실현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다 보니 전직 판사가 많아 시비가 일었지만 검사나 변호사, 법학교수도 얼마든지 그 자리에 갈 수 있고 또 가야 한다. 미국 행정부를 이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대에서 헌법을 강의한 법률가 출신이란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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