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우의 병상을 찾았다.

핏기 없는 얼굴에 퀭한 눈, 여윈 손목이 너무나 안쓰럽다. 형의 눈시울에 금방 이슬을 맺게 한다.

아우는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진 후 벌써 9년째 이렇게 누워있다. 과다출혈과 수술시간 실기가 그 주된 원인이란다. 용변은 물론 음식물 섭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희미하게나마 의식은 있어도 말로 표현하질 못한다. 반(半) 식물인간 상태다.

형이 손목을 잡고 이마를 쓰다듬자 아우는 사람은 알아보는 듯 잠시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애처로운 눈빛으로 형을 바라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언저리를 실룩거린다.

형은 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형, 나 좀 살려줘. 이건 사는 것이 아니잖아? 정말로 가망이 없다면 차라리 숨을 끊어줘. 혼자서는 그럴 수도 없어!’

아우의 눈물겨운 애원이다. 이럴 때 형은 절망한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니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숱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 이제 그만 진노의 채찍을 거두시고 아우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형은 한동안 울부짖었고 아우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형님! 제가 고2때부터 대학재학시절은 물론이고 사시공부를 하면서도 결혼직전까지 수도 없이 많은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형님께서는 꾹 참으시고 끝까지 보살펴 주신 은혜로 오늘날 제가 중견검사의 자리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하늘같은 형님의 은혜에 고개가 숙여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 (중략)

1993. 2. 6.

부산지점 검사실에서 막내올림.」

누렇게 빛이 바랜 갱지에 적힌 아우의 짤막한 편지내용의 일부다.

아우는 6남매 중 막내로서 차남인 이 형과는 11년 차이다. 중3때 부친을 여의고 그때부터 이 형이 도맡아서 뒷바라지를 했다. 명문 중·고교를 나와 법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하기까지 무던히도 형의 속을 썩이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그럼에도 이 형한테는 한없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아우였다.

아우는 1983년 검사로 임관하여 광주, 부산, 서울지검 등에서 십수년간 주로 특수부에 근무하면서 굵직하고 어려운 사건들을 많이 다루었다. 예리하면서도 치밀한, 타고난 검사였다. 동기생 중 선두그룹을 달리던 엘리트였다.

나는 형으로서가 아니라 대학 선배요 법조계 선배로서 아우의 검사생활을 지켜보는 동안 그 조직의 특수성과 생리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도 되었으나 그 분야의 산적한 개혁과제를 놓고 아우와 함께 토론도 해보고 고민도 많이 했었다.

아우는 검찰조직의 특수성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소신껏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윗분들과 갈등도 많이 빚었고 마침내는 크게 낙심하고 좌절한 나머지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검찰을 떠났을 정도로 불의와는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소신파였다.

그런 아우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현재의 검찰위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하다.

채동욱 총장 파동을 비롯하여, 세월호 참사 사건, 청와대 비선라인의 국정개입 의혹사건, 성완종 사건 등의 처리과정을 지켜본 대다수 국민은 크게 실망하고 분노마저 느끼기도 했다.

국민의 검찰이 아닌 권력의 검찰, 국민에게는 엄하고 강하지만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검찰, 정권의 호위무사로까지 전락했다는 혹평까지 듣는 정치검찰, 거기에다 벤츠 여검사에 그랜저 부장검사, 피의자 부인을 검찰청사 내에서 간음한 검사까지 나오는 등 조직 내 비리와 부패로 만신창이가 된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거의 잃어가고 있다.

검찰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이유다.

말 못하는 아우의 절규가 웅변처럼 들리는 듯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 차단, 과도한 특권의 폐지, 검찰인사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으로 법조 삼륜의 한 축인 검찰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대대적인 개혁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렇듯 검찰개혁이 시급한데도 검찰내부에서의 자성(自省)의 목소리나 자정(自淨)의 움직임이 뚜렷이 보이질 않고 검찰선배들의 고언이나 충고도 쉽게 들리지 않는다. 실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서너시간 머물다가 병실을 나왔다. 차마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들어갔다. 그 사이 아쉽고 외롭고 서러워서였을까? 아우의 양 볼엔 온통 눈물자국이다. 다시 형도 울고 형수도 조카도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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